'김기자가 가다' 카테고리의 글 목록불교인사이드
김기자가 가다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9. 4. 19. 14:18

슬픔의 땅,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낸 고려인

반응형

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 원행스님, 이하 종단협)는 사무총장 지민스님을 단장으로 각 종단 스님들과 재가 종무원들로 대표단을 구성, 4월 5일 부터 4월 11일까지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고려인 위령제'와 '고려인 한국문화체험문화제'를 열었다.

우즈베케스탄 타슈켄트 빅티미르 고려인 묘지

한국불교종단협의화간 봉행한 위령제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는 일제의 폭정을 피해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한 18만명이 1937년 구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했다. 지금은 3-4세대가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동쪽으로는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남서쪽으로는 르크메니스탄, 북쪽으로는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한다. 북서 일부는 아랄해에 면한다. 125개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국가이며, 국명은 ‘우즈베크인의 나라’라는 뜻의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했다. 국토는 남북간의 거리가 925km, 동서간은 1,400km이며 면적은 약 447,400㎢ 로 이 면적은 우리나 라 남북한을 합친 면적의 약 두배이다. 동쪽 국 경 지대 5분의 1은 산악지방으로서 동북부 쪽은 텐샨산맥의 산자락에, 서남부 쪽은 파미르 고원에 부분적으로 걸쳐있다. 이 산악 고지 대중 높은 곳은 해발 4,000m가 넘는 고지대들인데, 이곳 고지대 산악의 눈 녹은 물과 지하수로 인하여 관개사업이 전개되어 비가 없는 사막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면화 생산국이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2000년 현재 약 17만 5천여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현재 구소련 공화국 가운데 우즈베키스탄에 고려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중 약10만명 이상이 수도인 타쉬켄트 지역에 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은 역사적으로 1937년 이전까지 연해주 근방에서 강제 이주해 왔다

1937년 스탈린은 약 18만 명의 고려인들을 그들에게 전혀 생소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스탈린이 연해주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이유는 무엇보다도 중일전쟁이 본격화될 경우 일본이 극동지방의 고려인들을 일본의 소련 침략에 이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 소련 당국은 근본적으로 고려인들을 믿지 못하였는데, 고려인과 러시아인과의 충돌도 자주 발생하였다.

1937년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을 1,800대의 화물 열차로 9월 하순경부터 시작하여 12월경까지 중앙아시아로 이주하였다. 고려인들은 마치 짐승처럼 화물 열차에 태워져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까지 6,000km의 거리를 3-4주에 걸쳐 이동되는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과 노약자들이 병사하거나 사고로 죽었다.

1937년 소련정부가 연해주의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일. 이는 국경지방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일본의 스파이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예방조처로 취해진 것으로서, 스탈린의 민족 강제이주정책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 결과, 연해주에 있던 한인 약 20만 명이 모두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크 등지로 이주되어 소련시민으로 동화되었다. 그러나 이주 과정에서 수천 명의 인명과 막대한 재산손실을 빚어냈으며, 현재도 당사자인 한인교포들은 소련정부에 대해 배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불굴의 의지로 이뤄낸 삶의 터전

한인들의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에 대한 공식적인 이유는 ‘극동지방에 일본 정보원의 침투를 차단하기 위한 것을 내세웠지만 본질은 소수민족의 해체였다. 1차 이주는 결의문 채택과 함께 시작되어 9월21일까지, 2차 이주는 9월24일부터 10월25일까지 집행됐다. 스탈린과 예조프, 내무성과 운수성의 공동작품이었다. 스탈린의 특명을 받은 류쉬코프가 총지휘를 맡았다. 1차 이주가 주로 국경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조속히 이주시키는 목적이 있었다면, 2차 이주는 극동지방 전역의 한인들을 모두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장장 6000㎞에 이르는 중앙아시아로의 강제 이주 그 순간부터 한인들은 새로운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한인들은 먹을 것을 전혀 공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주했기 때문에 기차가 석탄이나 물을 공급받기 위해서 역에 정차하면 간이상점에 뛰어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아무 것이나 닥치는 대로 사다먹으면서 갔다. 또 열차에는 화장실이 없었기 때문에 역에서 열차가 서면 모두가 뛰어내려 대소변을 봤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히 어린 아이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이주 중에 아이들에게 홍역이 발생하여 아이들 사망률이 60%를 넘었다고 한다. 또 이주 중에 가족이 여러 열차로 흩어지는 바람에 이산가족이 다수 발생했으며, 크고 작은 사고도 매우 많았다고 한다. 중앙아시아 한인들이 버려진 곳은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와 인근 우쉬토베 지역,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남부 제정 러시아 시대부터 유배지로 악명 높았던 허허벌판이었다. 예조프가 스탈린에게 제출한 최종 완료 보고서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에총 2만여 가구 95,000여명, 우즈베키스탄에 1만6천여 가구 76,000여명 등 모두 171,781명이었다.

버려진 한인들의 삶은 비참했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고, 배움의 길도 막막했다. 국가기관 취업 등 사회진출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주거 환경 또한 집단수용소나 다름없었다. 이주 다음해에 7,000여명이 사망했다그 다음해에는 4,800여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이주 첫 해의 모진 학대와 고생을 이겨내며 농토를 개간하고 볍씨를 심어 대풍작을 이루었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3년 만에 자립기반을 이루는 기적을 일궈냈다. 중앙아시아의 모범적인 소수민족으로 새롭게 일어난 것이다.

한인들의 집념 덕분에 중앙아시아의 농업은 크게 발전했다. 우지베키스탄의 폴리토젤과 김병화 콜호즈,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 아방가르트 소프호즈 등 소련 전역에서 최고의 모범 집단 농장을 이들이 일궈냈다. 척박한 땅을 옥토로 바꾼 한인들은 소비에트 농업생산의 주요 축이 되었다. 한인들의 강인한 생명력은 중앙아시아에서도 빛을 발했다. 소련이 해체된 후인 1993년 4월 러시아 의회는 과거 과오를 시인하고 고려인 명예회복 법안을 채택했다. 새로이 거주 이전의 자유를 얻은 고려인에게는 희망의 땅, 연해주로 가는 길이 다시 열렸다.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역사적인 재이주는 1937년 이후 단절된 연해주의 한민족 역사를 새로 쓰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들어 재이주는 눈에 띄게 늘었다. 전반기에는 중앙아시아 민족갈등에 따른 위기감으로, 후반기에는 경제적 생활고에 짓눌려 고려인들은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자 연해주로 돌아왔다. 현재 러시아 연방을 포함한 구 소련 내 한인은 약 45만 명으로, 인구수에서 120여개 민족 중 25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 김종열 기자

반응형
반응형

바른 정진은 행복의 문을 여는 지름길

 

실지사 부림회 관득 손기성 회장

 

실지사는 각자님들의 사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사원 환경 정리에서부터 법회 준비와 주차까지 각자님들의 손길이 안가는 곳이 없다. 총지종 신행단체 중 가장 활동적인 실지사 부림회를 이끄는 주인공이 바로 관득 손기성 각자다.

항상 웃음 뛴 얼굴의 관득 손기성 각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작한 진언 수행은 평생 내 가정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생활 자체였다. 전쟁이 끝나고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묵묵히 걸어온 손기성 각자의 삶과 수행을 소개한다.

 

밀교의 진언 염송 수행을 먼저 시작하신 분은 관득 각자님의 모친 행원심 조태순 보살이다.. 올해로 88세를 맞은 노 보살님은 길고 어두웠던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각자님의 부친을 만나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 교편을 잡고 학생들을 가르치던 부친은 민족의 큰 아픔인 6.25를 만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어 병상에 눕는다. 그 어려운 시기를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이겨내려 각자님의 모친은 진각종에 귀의하고 성심으로 진언수행에 매진했다. 물론 어머님이 사원에 나갈 때면 손기성 각자는 항상 같이 다녔다. 그러나 부친의 병환은 날로 깊어갔고, 가정 형편은 더 어려워 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충청 제일의 명문인 대전중학교 당당히 합격한 각자님은 가정 형편을 생각해 진학을 포기한다.

 

각자님은 당시 대전에서 최고의 양복 기술을 가진 외삼촌을 찾아간다. 일본에서 양복 기술을 배운 외삼촌은 어린 조카의 청을 받아들여 조수로 일을 시킨다. 하지만 어린나이에 양복 기술은 벅찬 일이었다. 하지만 이를 악 물었다. 가족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는 자신의 바램을 지키기 위해서 하루하루 고된 노동을 견디었다. 18살이 되는 해 아버지가 오랜 병환 끝에 돌아가신다. 상을 치르고 출근 하니 외삼촌은 재봉틀 한 대를 가리키며 이제부터 내가 쓸 미싱이다.”말했다. 5년 만에 정식 기술자가 된 것이다. 그동안 매를 맞으며 배웠던 기술을 최고의 양복 기술자인 외삼촌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다. 관득 각자는 모두를 다 얻은 듯 했다. 조금씩 내일을 위해 저축하고 가족을 부양하면서 바쁜 일상을 보낸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학교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준비는 해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서울통신강의록구해 독학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꾸준히 진언염송을 하고, 가슴속에 차오르는 부처님의 가지력을 느낀다.

 

양복기술자로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노총각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됐다. 29살 되던 해 주위 사람의 소개로 평생 수행과 생활의 동반자인 박순임 무량수 보살님을 만나 결혼한다. 경상도 상주 출신의 보살님은 대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경주로 신혼여행을 갔다. 첫 날밤, 각자님은 새색시에게 옴마니반메훔육자진언과 비로자나불 수인을 가르친다. 평생 수행을 같이 하자는 뜻이다. 무량수 보살님은 어리둥절해 하며 따라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날이 진언행자로서 새로 태어나는 날이었다. 몇 개월의 신혼생활을 대전에서 보내고, 관득 각자는 서울로 갈 것을 결심했다. 좀 더 큰 곳에서 새로운 터전을 닦아보고 싶었다. 새색시를 데리고 서울로 온 젊은 진언행자 부부는 쌍문동에 사글세를 얻어 새 인생을 시작한다.

 

부부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직장 생활부터 시작해 작은 공장도 운영해보고, 모든 일을 같이 했다. 어느덧 자식들도 하나 둘 태어나 12녀가 태어났다. 비록 12번의 이사를 다녔지만 내집도 장만하고 아이들 대학 공부도 마쳤다. 장녀와 차녀는 배필을 만나 혼사를 치르고, 이젠 엄마가 되었다. 딸 들은 시집을 갔지만 가까운 곳에 있어 자주 모인다. 주말에 오는 날에는 온 가족이 실지사 자성일 법회에 참석한다. 자녀들은 자라면서 부모님이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다고 한다. 부처님 같은 자애로운 마음으로 자식들을 키웠다. 큰 병 없이 잘 자라 사회의 일원이 되고, 결혼하여 부모가 된 자녀들이 관득 각자님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불자들의 수행 방법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팔정도(八正道). 관득 각자의 인생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활이 바로 팔정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명, 정정 어느 하나 행하지 않은 것이 없다. 팔정도의 수행을 바탕으로 매일 진언염송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이룬 삶이라 겸손히 말하는 관득 각자는 매일 매일 변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지만, 수행이 쌓이고 쌓이면 처음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며 작은 공덕이 모여 큰 복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기자는 관득 각자의 인터뷰를 마치며 초등학교 바른생활부터 대학과정의 윤리학 교과서에 나오는 모범적 인간상이 바로 저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모든 불자들이 저리 된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될까. 팔정도의 삶과 꾸준한 수행은 우리의 삶을 편안한고 윤택하게 해준다. 욕심 부리지 않고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내 불성을 일깨우는 삶이다.

실지사=김종열 기자

반응형
반응형

1942김기자가 가다

 

사원은 우리집 모두가 한가족 실지사 각자 신행단체 부림회

 

자발적인 결성

 

1227일 실지사(주교:법우 정사) 자성일 법회가 끝나자 공양간은 분주했다. 10여 명의 각자님들이 함께 들어와 공양을 시작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안부를 물으며 공양하는 각자님들은 다름 아닌 실지사 신행단체 부림회각자님들이다. 이 날은 부림회의 정기총회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지난 일 년 동안의 살림살이를 회원들에게 공개하고, 내년의 주요활동 계획을 잡는 자리다.

부림회회장 관득 각자는 총지종 입교개종(立敎開宗) 당시 원정 대성사의 가르침을 따라 진각종에서 부터 신행을 이어온 교도다. 2014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의기투합한 실지사 각자님들은 본격적인 신행단체 부림회를 결성한다. 구성원은 최고령인 대성(정태우)각자님을 비롯한 총 9명에 실지사 주교 법우정사를 명예회원으로 총 10명이다. 정식 가입은 안했지만 사원에서 행사가 있거나 환경을 정리하는 일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각자님들도 7-8명 더 있다.

 

우리는 형제

 

부림회의 첫 활동은 봉축 연등 만들기와 사원 내외의 연등 설치였다. 회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내 집일처럼 몸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내 가정의 잔치를 준비한다는 기분으로 사원 내외의 청소와 환경정리도 했다. 봉축 연등회에도 참석하여 종단의 연등 행열을 이끌었다. 실지사 교도들도 신명나는 연등 축제를 함께 즐기며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온몸으로 느꼈다.

 

회원들은 새봄을 맞아 신축 실지가 정원을 아름답게 가꿨다, 꽃나무를 심고, 잔디가잘 자라도록 관리했다. 특히 교도들이 언제든지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테라스 공사도 자발적인 기금으로 직접 공사했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법계궁을 아름답게 장엄하고, 교도만이 아니라 지나던 이웃 주민도 언제나 들어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자리를 부림회 회원들의 작은 보시로

 

회장 관득(손기성)각자는 실지사는 지난해 기존의 사원을 헐고 신축한 사원입니다. 그 동안은 사원의 구조가 가정집을 개조한 상황이라 수행 환경이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부림회 각자님들은 신축 사원을 전국에서 제일가는 수행도량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언제와도 내 집같이 편안한 분위기와 정통 밀교 도량으로서 장엄함을 증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며 회원들의 자발적인 봉사활동을 설명했다. 또한 이전의 사원에서는 각자님들이 모여 법담을 나누고 서로의 수행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없었습니다. 사원이 신축되면서 각자님들이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생겨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법회가 끝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바빴습니다.”며 실지사 신축으로 교도들의 단합과 신행 활동에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신행은 어린시절 그 기초가 다져집니다.

역시 실지사의 창건을 함께한 고운(김승원) 각자님은 자재 분의 나이가 올해 44세로 종단 창종 역사와 같다. 간난이가 건장한 성년이 되고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내내 보살님과 각자님은 진언염송과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이루어졌다 했다. 고운 각자님은 하루는 사원에 오기위해 집에서 걸어오고 있는데 삼양동 사거리의 한 교회에서 유치원 아이들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예배를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봤습니다. ! 우리 실지사도 저런 모습이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 한 켠으로 부러웠습니다.”요즈음의 총지종 교화의 어렵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시대가 바뀐 만큼 교화의 방편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온가족이 함께 와서 영.유아들을 편안히 맡기고 부모들은 정진할 수 있는 방안이 검토 되었으면 합니다. 사위, 며느리, 손자들이 같이 오고 싶어도 마땅히 아이들을 돌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 힘들것이 현실입니다.”라고 자신들의 종교가 자식을 거쳐 손자까지이어 지기를 바랬다.

 

부림회 각자들의 신행담은 바로 총지종의 역사였다. “하루 중에 행복함은 새벽불공 함에 있고, 칠일 중에 행복함은 자성일에 빠짐없이 불공정진 함에 있고, 한 달 중에 행복함은 월초불공 함에 있고, 일 년 중에 행복함은 새해불공 함에 있고, 일평생에 행복함은 평생으로 변함없는 그 종지에 있느니라.”는 종조 원정대성사님의 법설을 믿고 평생을 그대로 실천한 모습을 각자님들의 얼굴에 쓰여 있었다.

 

부림회 각자님들은 마지막으로 종단이 힘드는 것은 알지만 유치원부터 초, , 고까지 일관된 종지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있어서면 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 받은 교육은 평생을 자신의 가치관을 지배한다고 봅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자란 아이는 평생 불자로서 윤택한 삶을 살아 갈 것입니다.”며 어린이와 청소년 교화에 종단의 힘을 기우려 주기를 당부했다.

 

병신년 새해에는 원숭이처럼 민첩한 부림회 각자님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회원도 더 늘어나고, 이웃과 교도를 위한 봉사 활동과 염송정진에서는 물러남 없는 용맹정진하는 신행단체가 되기를 바란다.

실지사=김종열 기자

반응형
김기자가 가다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6. 5. 16. 13:03

‘제36차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 세계평화기원법회를 봉행

반응형

청소년들을 통해 한일 양국의 미래를 준비하자

36차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세계평화기원법회를 봉행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회장 자승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와 일한불교교류협의회(회장 후지타 류조 스님)1113일 오전10시 제2교구본사 용주사 관음전에서 36차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세계평화기원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제36차 교류대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천태종 총무원장 춘광 스님, 진각종 통리원장 회정 정사,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 총지종 통리원장 법등 정사, 상임이사 총지종 총무부장 인선 정사, 조계종 제2교구본사 주지 성월 스님 등 한국불교 지도자 100여 명과 일한불교교류협의회장 후지타 류죠 스님, 부회장 시바타 테츠겐 스님 등 일본 대표단 100여 명 등 총 200여 명이 참가했다.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장 자승 스님은 세계평화기원대법회 대회사를 통해 금번 대회 주제인 한일 청소년 문화교류를 통한 유대강화는 불교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전 세계의 여러 국가가 함께 고민하고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영역이라며 동북아 불교의 중심인 한국과 일본이 함께 모범이 되는 선례를 개발해 전 세계에 보급할 수 있다면 이 역시 세계 불교에 기여하고 선도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라고 양국불교의 역할을 강조했다.

 

일한불교교류협의회장 후지타 류죠 스님도 인사말을 통해 올해는 한일 청소년 문화교류를 통한 유대강화를 대회 주제로 작년에 이어 청소년에 관한 사안에 대해 활발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청소년의 국경을 넘은 교류, 교화육성이 급선무라며 이 대회를 통해 한일 양국의 상호이해, 우호친선이 더욱더 깊어지고 세계평화에 공헌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부처님께 서원했다.

 

또 협의회 부회장 춘광 스님은 축사를 통해 불교의 핵심적인 가치는 평화와 평등에 있다. 이번 교류대회도 인류 번영과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청소년들에게 자부심을 길러주는 방안들이 많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으며, 협의회 부회장 홍파 스님과 시바타 테츠겐 스님은 부처님 전에 한일불교의 중흥발전과 세계평화, 인류화합공생을 발원했다.

세계평화기원대법회에 이어 오후1시부터 용주사 관음전에서 한일 청소년 문화교류를 통한 유대강화를 주제로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와 일본 대정대학 코야마 텐유 교수가 각각 주제 발표했다.

이어 한일불교문화교류협회 사무총장인 법등 정사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86일과 89일을 맞아 매년 각 사찰에서 핵무기 없는 불국토와 세계평화를 위한 평화의 타종 시행 한일 청소년들의 문화체험 교류 적극 실시 부처님 탄생지 네팔 지진 참사로 희생된 이들의 극락왕생 기원 등을 골자로 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발표했다.

 

반응형
김기자가 가다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6. 5. 16. 12:58

전북 불교 포교의 새로운 희망 조계종 전주 「참좋은 우리절」

반응형

전북 불교 포교의 새로운 희망

조계종 전주 참좋은 우리절

 

절기상으로 계절이 바뀐다는 처서823일 전주를 찾았다. 아직은 8월의 무더위와 태풍의 북상의 영향으로 습한 공기가 가슴속으로 밀려들었다. 전주는 김제 금산사를 본사로 조계종 제17교구 관할이다. 그러나 오늘 참배를 한 참좋은 우리절은 전주시 완산구 삼천산 자락에 위치했으나 제17교구 관할이 아닌 조계종 직할교구 소속 사찰이다.

산중턱에 위치한 사찰은 좁은 농로를 따라 족히 30분은 걸어야 닿을 수 있었다. 3층 콘크리트로 지은 현대식 사원 건물은 천태종 사찰 건축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사찰 마당에는 오늘 있을 관세음보살입상 점안불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차양을 치고 제단을 차리는 사람들이 종무원이 아닌 신도들이었다. 입구 도로에서부터 자원봉사자들이 차량 안전한 운행과 주차를 도왔다.

 

이번 취재의 편의를 제공한 박성웅 사무국장을 만나러 사원2층 종무실을 찾았다. 종무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모두가 환한 웃음으로 반갑습니다.’ ‘어서오십시오하며 인사를 건냈다. 기분이 좋았다. 모두가 환영하는 분위기다. 간단히 신분을 밝히고 용무를 말하자 한 보살님이 직접 안내를 해주신다. 보살님의 친절한 안내로 어렵지 않게 박성웅 사무국장을 만나 그간의 안부를 묻고, 오늘 취재의 방향을 설명했다. 사찰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받고, 먼저 3층 큰법당에 올라 부처님 전 삼배를 올리고, 잠시 입정하고 육자진언을 묵송했다.

종무소와 소법당, 사원 마당의 행사의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삼천산의 기운 때문인지 이곳 불자들의 신심이 뭉쳐진 법당이라 그런지 무더위의 짜증도 금방 내려놓을 수 있었다.

 

관세음보살 입상 점안법회

 

참좋은 우리절은 대법당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셨다. 이날은 신도들의 염원을 모아 사찰입구 마당에 새로 관세음보살 입상을 모시고 점안법회를 봉행했다.

신도로 보이는 보살님이 사회로 시작된 법회는 주지 회일 스님의 집전으로 약 300여명의 신도들이 동참했다. 점안의식에 이어 관세음보살에게 올리는 육법공양은 그동안 기자가 참관한 여느 사찰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공양에 참가한 신도들은 20-60대까지의 다양한 연령층으로 평범한 법복을 입고 각자 한 가지씩의 공양물을 정성껏 올렸다. 바로 가정에서 조상이나 부모에게 공양을 올리는 장면이었다. 불필요한 예법과 가식은 버리고 공덕으로 올리는 육법공양이었다. 이 절이 소박하고 정감 넘치는 사찰이라 대변해 주는 모습이다. 관음경 독송으로 점안식이 끝나자 신도들은 각자 방석을 챙겨들고, 3층 큰법당으로 질서 있게 이동하여 일요법회와 백중 영가 천도제 (7재 중 6)를 봉행했다.

 

전북 베트남 불자회 원오도량창립 법회

 

이날 오후에는 전북지역 베트남 결혼이주여성과 가족 등 40여명이 3층 큰법당에서 전북 베트남불자회 창립법회를 봉행하였다. 법회는 베트남 출신 드엉탄 스님과 광민 스님이 베트남어와 자국의 불교의식으로 집전했다.

다문화가정 지원 단체인 ()착한 벗들의 대표인 참좋은 우리절 주지 회일 스님은 지난 2012년부터 결혼이주여성의 한국 적응과 취업 및 창업을 적극 지원해 왔다. 착한 벗들에서 활동중인 베트남 결혼이주여성들이 하나 둘씩 모여 자발적으로 베트남 전통방식의 법회를 열자는 의견을 모았다. 주지 회일스님과 착한 벗들의 간사로 일하는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인 홍현주씨가 지난2월부터 차근차근 준비하여 서울, 광주에 이어 세 번째로 불자회 창립의 결실을 보았다.

불자회는 매월 정기법회와 지역 사찰별 순회법회를 통해 불심을 높이고 친목을 도모하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 할 예정이다. 또한 베트남 불자들을 위한 전용 법당 건립과 베트남 고승 초청 법회도 계획 중이다. 이날 모인 베트남 가족들은 서로가 언니, 동생, 이모, 삼촌으로 부르며 고향을 떠나 멀리 정착한 고달픔을 서로 달래고, 한국에서의 생활에도 충실하기를 부처님께 기원했다.

 

자원봉사와 다양한 신행 단체의 적극적인 활동

 

참좋은 우리절이 전북 불교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신도들이 젊다는 것이다. 나이 많은 노장님들도 보이지만 공양간, 법회준비, 종무소, 어린이법당, 주차 봉사 등 에 참여하는 신도들이 젊어 보인다는 것이다. 40대가 중심축을 이루고 노장들의 지도와 조언을 받아 신행 단체를 구성하고, 신심에서 울어난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된다.

신행조직으로는 65세 이상의 불자들로 구성된 미타회’, 45세 이상 거사들로 구성된 거사회’, 보현보살의 행원력을 바탕으로 신행에 정진하는 보살들의 보현회’, 문수보살의 십대원을 바탕으로 신행에 정진하는 문수회’, 부처님께 음성 공양을 올리는 합창단’, 참좋은 우리절 불교대학을 졸업한 법우들의 모임인 불교대학 동문회, 19세에서 35세까지의 청년들의 모임인 청년회가 활동을 하고 있다.

자원봉사 모임은 기도 제사 운영과 법당을 관리하는 모임인 법당운영회’, 법회를 준비 및 정리를 하는 법회지원회’, 신도들의 신행상담, 애경사를 지원하는 법등회’, 신도들의 기도 접수와 종무소 업무를 지원하는 사무지원회’, 공양간을 지원하는 공양간지원회’, 도량시설과 외부환경을 담당하는 시설관리회’, 불교대학의 운영과 관리를 지원하는 불교대학 운영단이 사찰의 모든 일을 관장하고 있었다. 신도들은 사찰을 자기 집이라 생각한다. 청소부터 큰 법회까지 서로의 작은 힘을 모아 운영해 나간다.

매주 일요일 봉행되는 일요법회에는 약200여 명의 신도들이 동참한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우리절에 어린이와 유아들은 소법당에서 어린이 법회에 동참하거나, 놀이방에서 자원봉사 이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다. 신도들은 마음 편히 자원봉사와 신행 활동에 참가 할 수 있다.

신도들은 우리절에 와서는 모두가 가족이 된다.

 

한 가족이 되어버린 참좋은 우리절신도들

 

참좋은 우리절의 위치는 전주 완산구 외곽에 있다. 큰 대로에서 좁은 농로를 따라 걸어서 30분은 족히 걸리는 산 중턱에 있다. 한마디로 접근성은 떨어진다. 그런데도 많은 신도들이 모이는 이유는 뭘까? 바로 이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해 주는 마음, 부처님의 품안에서는 한 가족이라는 생각이다. 비록 도회지의 이웃 종교와 대형 사찰 보다는 규모나 신도 수는 작지만 이 사찰만의 특별한 힘인 가족 같은 정이 큰 신행의 원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전북 지역은 이웃 종교에 비해 불교의 교세가 약하다. 가까운 익산은 원불교의 성지이고, 시내 전동 성당을 중심으로 한 천주교도 교구를 이룰 정도로 그 세력이 크다. 총지종도 흥국사와 만다라 요양원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수많은 물건들이 진열된 대형 마트가 바로 옆에 있어도 언제나 구수한 정담과 인정이 오가는 전통시장이 그 명맥을 이어가듯 불교도 우리 정서와 우리의 유전자 속에 깊이 자리한 전통시장의 단골집 같은 곳이다. 언젠가 다시 올지 모르는 우리 불자들의 발걸음을 맞을 준비하고 저극적인 교화를 서두를 시기다.

전주= 김종열 기자

 

 

반응형
김기자가 가다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5. 7. 30. 12:55

제5차 100인 대중공사 잠실 불광사에서 개최

반응형

조계종 서의현 전 총무원장 사면은 잘못된 결정이다

 



- 5100인 대중공사 잠실 불광사에서 개최

 

 조계종의 종단개혁과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 추진위원회가 주최하는 제5차 대중공사가 729일 잠실 불광사 보광전에서 열렸다.

 

 이번 대중 공사는 최근 조계종 재심호계원에서 서의현 전 총무원장을 공권정지 3년으로 재심의 판결과 94년 이후 개혁 종단의 현실에 대한 대중들이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공동추진위원장 지홍 스님(불광사 회주)은 대중공사에 앞서 토론을 여는 인사말에서 오늘 우리는 어쩌면 한국 근, 현대 불교사의 한획을 긋는 중요한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의제의 재목은 종단개혁과 서의현 전 총무원장 재심 결정이지만, 그 의미는 한국불교의 자주화, 민주화라는 1994년 종단 개혁의 정신이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성찰하고, 나아가 미완의 개혁을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첫 걸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대중 공사가 ‘94년 종단 개혁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해법을 찾기를 바랍니다.”며 이번 대중공사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어 제4차 대중공사 결과정리와 종단 불신 해소 입장 표명 및 후속 추진 상황보고, 94년 종단개혁과 서의현 전 총무원장 재심결정 및 94년 종단개혁의 정신과 미래를 주제로 브리핑이 있었다. 전체토론 후 모둠토론으로 진행된 대중공사에서 사부대중이 재심호계원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논란 해소를 위해 사부대중이 참여하는 대중공의 기구 구성이 필요하다고 결의했다.

 

 재심논란에 대한 사실규명과 대안을 마련하고 종단개혁 정신 계승 방안까지 모색하기 위해 사부대중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의견이다. 이번 논란의 대한 책임이 재심호계위원들에게 있다고 판단하고 사퇴를 권고하기로 했다.

 

 ‘종단개혁과 서의현 전 총무원장 재심 결정을 의제로 열린 5100인 대중공사에 참가한 사부대중은 이같이 결정했다. 대중공사 참가자들이 함께 한 전체토론과 모둠별 토론에 이어 모둠토론 진행자와 대중공사 의제기획팀, 대중공사 상임추진위원들이 논의 끝에 도출한 결론이다. 모둠토론 결과 발표에서는 재심호계원 판결 무효와 재심호계위원 사퇴, 특별위원회 구성 등의 주장이 공통 의견으로 모아졌다.. 다만 재심호계원의 판결을 무효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행 종헌·종법체계에서 벗어난 결정이어서 결의사항에서 제외됐다.

 

 이날 참가자들이 구성하기로 결의한 대중공의 기구는 재심논란과 멸빈자 사면 문제, 과거사 문제를 정리 등을 담당하게 된다. 중앙종회와 총무원이 주축이 되어 기구 구성 및 관련 사항을 집행해 나가기로 했다.

 

 대중공사에 참가한 사부대중 역시 재심논란을 계기로 개혁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사부대중이 함께 불교의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자고 뜻을 모았다.

 

 종회의장 성문스님은 대중공사에서 많은 의견들이 나왔다. 중앙종회가 지혜롭게 해결해야 할 사안이 있다면 의원 스님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방안을 모색 하겠다.”갈등과 대립을 넘어 미래로 나갔으면 한다. 1994년 개혁 이전과 이후 종단은 많은 변화를 이뤘다. 개혁 내용에 대해 계속해서 보완해 나가야 한다. 이 문제를 지혜롭게 풀고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해 함께 나가자고 당부했다.

 

 토론 결과를 발표하기 직전 호계원장 자광스님은 재심 논란에 대해 기탄없는 말씀을 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린다. 우리 종단은 94년 개혁 정신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이번 결정은 종헌종법이나 호계원법으로나 위배되는 사항이 없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 호계원장 고유권한으로 처리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 드린다언제든지 사퇴할 것을 마음먹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했다. 사퇴 시기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내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고 밝혔다.                             잠실 불광사=김종열 기자

 

                    5차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 논의결과

 

5차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 논의결과 우리 대중공사 사부대중은 확고한 대중공의의 토대 위에 서서 개혁의 대의를 살려 과거 문제를 바람직하게 정리하고 종단의 진정한 화합과 새로운 백년대계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우리의 의견을 정리한다.

 

- 다음 -

 

첫째,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 재심결정은 개혁정신과 대중공의에 어긋난 잘못된 판결이다.

 

둘째, 이에 대해 재심호계위원들은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을 권고한다.

 

셋째, 사부대중이 참여하는 대중공의 기구를 구성하여 멸빈자 사면 등 미래지향적으로 종단 과거사 문제를 다뤄가며, 중앙종회와 총무원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고 집행한다.

 

넷째, 개혁정신을 드높이고 이 시대에 맞게 실현하여 사부대중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화합된 불교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매진한다.

 

대중공사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들을 모두 소중히 수렴하여 종단의 미래를 만들어가는데 최선을 다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