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자가 가다. 연꽃으로 피어난 불공의 원력불교인사이드
총지종보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3. 4. 17. 15:24

김 기자가 가다. 연꽃으로 피어난 불공의 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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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지인사 신정회 홍순유 회장의 남다른 가피 이야기

 

인천에는 총지종의 두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광역시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천시 북구에서 부평구로 이름을 바꾼 이곳에 시법사, 지인사 두 사원 모두가 오랜 세월 교화의 도량으로 큰 틀을 이루고 있다.

최근 지인사에는 웃음이 넘치고 있다는 이형자 통신원의 제보를 받은 기자는 그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올해처럼 유난히 더웠던 여름을 지나면서 무슨 좋은 일인가? 한여름 더위를 불공으로 이겨내서 그런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통신원의 제보에 지인사 승효제 전수님께 사전 약속을 하고 자승일 불공 때 인천으로 차를 달렸다.

부평은 초행이라 자동차의 네비게이션이 가르쳐 주는 대로 서울 순환 고속도로를 거쳐 송내 나들목으로 진출했다. 직진과 우회전을 거쳐 골목으로 접어드니 바로 지인사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네비게이션의 잘못된 안내로 골탕을 먹은 적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그 성능에 만족했다.

여러 총지종 사찰을 방문 취재해 보았지만 지인사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깔끔하다는 느낌이다. 사원 마당을 들어서니, 여러 가지 꽃들이 만발하다. 연꽃을 피운 여러 개의 수조도 보이고, 사원의 분위기보다는 잘 가꾸진 공원에 온 느낌이다.

자승일 불공을 모두 마친 후 교도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단체 사진을 먼저 찍어드렸다. 기왕 왔으니 최소한의 서비스는 기본 아닌가? 다함께 공양을 한 후, 서원당에서 홍순유 회장과 박옥선 부회장, 최광희, 김태순 감사님과 자리를 마련했다. 김 기자는 회장님께 단도직입적으로 여쭈었다. “회장님. 지인사에 얼마나 기쁜 일이 있길래.. 서울까지 소문이 났습니까?” 회장님은 수줍은 웃음을 띄우며 우리 사원이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훨씬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정원의 꽃들이 너무 예뻐 교도들의 얼굴이 꽃처럼 환해져 그런가 봅니다.” 라 말한다. 그러면서 꽃들을 정성들여 가꾸어주신 지성정사님과 승효제 전수님의 여름동안의 노고에 감사했다. 그런데 옆에 계시던 박옥선 부회장이 진짜 경사는 회장님 댁에 있습니다.”회장님 아드님이 이번에 소령으로 진급했습니다. 이보다 더 큰 경사가 어디 있습니까?” 김 기자의 귀가 번뜩였다. “아 그런 경사가 있었군요.”

홍순유 회장님의 아들은 이 나라 국방을 책임지는 대한민국의 육군 장교였다. 홍순유 회장의 아들 강인식 소령은 12녀 중 막내로 대학을 졸업하고 ROTC로 임관해 직업군인의 길을 가고 있었다. 어린 젓 먹이 때부터 회장님의 등에 업혀 지인사를 다녔다 한다. 지금도 휴가 때면 지인사에 들러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력에 감사의 불공을 드린다.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편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을까? 회장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병으로 의무 복무만 하는 것도 아닌 장교로서 병사들을 통솔해야하는 직책은 먼저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중요한 자리다. 홍순유 회장님은 강 소령이 입대하는 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들을 위한 불공을 올렸다. 회장님의 불공은 우주법계를 움직여 강 소령에게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펼쳐진다. 강 소령이 보직을 옮기고 나면 전 근무처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전방 GP에서 근무 중, 차량 사고를 극적으로 피한 일 등 모두가 하루도 끊이지 않았던 홍 회장님의 불공의 힘이었다. 군대는 매일 사고와 위험을 안고 있는 곳이다.

김 기자가 군 생활을 하던 20여 년 전 에도 많은 사고를 목격했다. 지금도 아찔했던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제대하고 나서 안 일이지만 우리 모친께서도 매일 양초공양을 올렸다 한다. 위험하고 어두운 곳을 밝혀 달라고 부처님 전 서원했다고 하셨다. 김 기자가 지금도 부처님 일을 하는 것도 모두가 어머니의 양초공양 덕이 아닌가 생각한다.

홍 회장님이 총지종에 입교한 사연 또한 남다르다. 경기도 화성의 부유한 집에서 자란 홍 회장님은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인 양장기술자였다. 부평 토박이인 강정희 각자님을 만나 이곳으로 왔다. 당시 부평에는 양장 원단을 만드는 공장들이 있어 작은 양장점을 운영하며 살림을 꾸려갔다.

1973년 어느 날, 당시 정혜원 스승님이 법의를 만들고자 오셨다. 홍 회장은 단번에 스승님께 반했다 한다. 저리 멋진 옷을 입고 다니시는 분들은 뭔가 남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정혜원 스승님의 교화로 바로 총지종에 입교해 오늘날까지 39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행정진에 임했다. 홍 회장님의 수행 기간이 바로 지인사의 역사인 것이다. 강정희 각자님도 열정적이다. 사원의 힘든 일을 도맡아 하시고, 홍 회장님이 신정회를 이끌어나가는데 큰 역할을 한다. 두 분의 아름다운 모습에 한참을 넋을 잃고 얘기를 들었다.

지인사가 인천 교화의 중심 도량인 이유가 있었다. 밤 낮 없는 수행정진으로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력이 두루 미치는 성취의 도량 지인사. 그 곳에는 자애로운 두 분 스승님과 사원을 내 집 같이 생각하는 교도들이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원을 나서는데, 배웅해 주시는 홍 회장님과 각자님의 모습이 한 쌍의 연꽃으로 어른거린다. 인천 지인사=김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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