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세인과법에 따라 전생의 빚을 갚고 현생을 더욱 윤택하게 하는 부처님의 장엄의식
주간불교신문 창간 40주년을 맞아 한국불교의식을 대표하는 경기도 양주 청련사 생전예수재(예수시왕칠재)를 보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상진 스님을 만났다. 상진 스님은 염불 소리에 이끌려 출가를 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범패 서산 어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상진 스님께서 말하는 생전예수재의 의미와 경기도 무형문화재가 되기까지의 과정, 스님의 수행과 불자들에게 전하는 법문을 들어본다.
-청련사에서 매년 중양절에 설행하는 예수시왕생칠재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요.
먼저 주간불교신문 창간 4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출가 전부터 주간불교신문을 통해 많은 스님들의 주옥같은 법문과 불교계 소식을 접했습니다. 현대 사회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신문으로 더욱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청련사 예수시왕생칠재는 우리가 흔히 생전예수재라 부릅니다. 한국 불교에는 면면히 내려오는 의례와 의식이 있습니다. 의례는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의식입니다. 생전예수재에는 부처님의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삼세인과법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빚지고는 못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생을 사는 것은 과거에 진 빚을 갚고 있는 것입니다. 전생에 맺힌 인연들이 현생에 원한으로 나타납니다. 과보는 현생에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생전예수재는 참회재입니다. 삼세를 살아가는 중생들은 전생의 과보를 현생에서 참회해야 다음 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전생과 현생의 안 좋은 인연들은 참회로 풀고, 좋은 일은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내생의 삶이 만들어집니다. 참회는 불교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예수재는 참회를 바탕으로 전생과 현생의 모든 업장을 소멸하는 의식입니다.
-청련사 예수시왕칠재(생전예수재)의 역사와 설행 과정을 말씀해주십시요
윤달이 들면 예수재를 봉행하는 것은 우리 불교의 오래된 법식입니다. 청련사는 조선조 초기 ‘동청련 서백련’의 양 열반계(兩涅槃界) 사찰로 지정이 됩니다. 사후 정토왕생을 위해 미리 복을 짓는 예수재가 1960년대부터 설행되기 시작합니다. 청련사 사중의 스님들이 범패ㆍ작법ㆍ장엄을 맡아 설행됐습니다. 그러던 중 청련사 예수재의 전통과 특성을 체계적으로 전승을 위해 2010년에 보존회를 발족하게 됐습니다.
청련사는 20세기 초부터 경제(京制) 동교(東郊) 파에 속한 주요 사찰입니다. 1910년 청련사에 출가한 능해(能海, 1892~1979) 스님으로부터 덕봉(德奉, 1911~1994) 스님, 청호 (淸湖, 1915~1999) 스님, 춘담(春潭, 1915~1960) 스님, 벽파(碧波, 1939~2011) 스님, 백우(白牛, 1934~2015) 스님의 계보를 이어 제가 예수시왕생칠재를 설행해 오고 있습니다. 경기도 양주로 옮겨오면서 보존회와 안정불교대학을 중심으로 예수재의 체계적인 전승과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재의 활성화를 위해 설행시기를 ‘윤달이 든 해’에서 ‘중양절’로 조정하여 해마다 설행하고 있습니다.
생전예수재의 설행 과정을 설명해 드리면 먼저 예수재는 괘불이운으로 시작됩니다. 괘불이운은 부정한 것을 제거하고 신중님을 청한 후 진행한다. 이어지는 조전점안은 재자들이 전생 빚인 금은전과 함합소를 명부고사 전에 바치는 의식입니다. 생전예수재는 전생에 지은 빚을 갚고자 현생의 ‘나’를 위해 지내는 49재이지요. 또 소청사자는 명부의 사자를 청해 설재 공덕을 증명하게 한 후 사자를 통해 명부시왕님께 아뢰도록 하는 불공의식입니다.
소청명부는 지장보살과 명부시왕 및 여러 성중을 청해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의식이며 소청고사는 고사판관을 청해 공양을 올리고, 전생의 빚과 독송할 경전이 적힌 함합소를 전하는 의식입니다. 전시식은 사바세계에 집착해 중음계에 떠도는 중생에게 참회의 법을 설해 정토세계에 태어나길 서원하는 의례입니다. 경신봉송은 설재자들이 정성껏 바친 금은전과 함합소(경전)를 명부시왕과 고사판관이 잘 보관할 것이란 확인과 함께 예수재 증명을 위해 모신 불보살님과 여러 성중들을 보내드리는 의식을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청련사 예수시왕칠재(생전예수재)가 경기도 지정 무형문화재가 됐습니다. 지정 과정과 의미를 말씀해 주십시요.
청련사는 서울 왕십리 시절부터 조선 왕조의 왕생 발원 사찰로 많은 유, 무형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양주로 터를 옮기면서 먼저 유형문화재의 가치를 알리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총 15점의 탱화 등 무형문화재를 권위 있는 불교학, 미술사학 교수님들의 자문과 연구를 거쳐 학술발표회를 가졌습니다. 이를 근거로 유형문화재 15점이 경기도 지정 유형문화재로 등재됐습니다.
유형문화재 등재를 마치고, 청련사의 오랜 전통인 생전예수재에 대한 학자들의 등재 권고가 이어졌습니다. 먼저 범패 어산 어장인 저를 무형문화재로 등재하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저는 개인의 문화재적 유산보다는 청련사가 이어온 불교문화의 정수인 생전예수재 등재를 주장했습니다.
먼저 청련사의 역사적인 위상과 생전예수재의 역사성, 정통성을 입증하는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이 작업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많은 학자의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고, 긴 연구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우선 관련 학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의견을 듣고 각자 전문 분야에 대한 연구를 의뢰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연구에 참가한 학자들이 하나, 둘씩 연구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모아 지난 2019년 1월 19일 청련사 대적광전에서 학술발표회를 개최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지정을 서둘렀습니다. 작년 2021년 9월 9일에 지정 심사를 위한 시연회를 성대히 치렀습니다. 그 외 여러 가지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올해 5월 20일 경기도는 청련사예수시왕생칠재보존회 이름으로 신청한 청련사 생전예수재를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66호 생전예수재 보유 단체로 지정했습니다.
-범패 어산 어장이신 스님의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출가가 좀 늦은 편입니다. 서른을 넘기고 출가를 했습니다. 제가 출가 전 어느 날 시골 동네를 지나가는데 나무아미타불 소리가 들려 발길이 멈쳤습니다. 궁금해서 둘러보니 어느 집에서 할머니가 월봉 스님의 독경 테이프를 틀어 놓으셨더군요. 그러다 시내에서 어느 레코드 가게에서 김성공 스님의 염불 테이프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저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마산 원각사 주지 철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를 했습니다. 길바닥에서 들었던 염불 소리가 제가 부처님의 제자로 살게 된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출가를 해 보니 제가 참으로 잘못 살아왔더 라구요, 그래서 선암사 행자 시절 원주 스님께 부탁을 올려 삼성각에서 100일간 참회 기도 정진을 했습니다. 참으로 많은 후회와 참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가르침을 주는 많은 인연을 만나게 됩니다. 행자 시절 선암사에서 당시 중앙승가대 학승이던 20대 한 스님을 만납니다. 그 스님이 저에게 “최 행자님. 물은 말이죠. 산에서 한 방울씩 떨어져 냇물이 되고, 냇물이 모여 강을 이루고 바다로 흘러가요”라고 말하더라구요. 그러고 그 스님이 방학 때 내려와 하는 말이 “최행자님. 물이 흐르다가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요”하더군요.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죠. 중노릇하면서 차츰 그 뜻을 알았습니다. 물이든 사람이든 처음부터 큰물은 없다. 물이 한길로 바로 흘러가지는 못한다. 큰 고난을 만나면 돌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은사 스님 시봉 살다가 1992년도에 태고종 종립교육기관인 동방불교대학 범패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정진하는 마음으로 범패를 배웠습니다. 1999년부터 강단에 서 후학들을 지도했죠. 후학들을 지도 하면서 점점 염불소리가 더 좋아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후로 청련사와 인연이 되어 안정불교대학과 예수시왕칠제 보존회를 통해 대중들과 함께 염불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는 스님이 되고부터 하루 3시간 이상 누워본 적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로 살면서 게으름은 가장 경계해야 할 마장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육바라밀을 불제자로서 지켜야 할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의 육바라밀을 바탕으로 내 자신을 돌아보고 참구하면서 생활합니다.
저는 새벽정송하고 하루를 시작해 주어진 부처님의 일을 성실히 하는 것이 수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리 살다 보니 오십 대에 폐결핵이 걸려 고생한 것도 모르고 지나갈 정도였습니다. 저를 검진한 동국대 의대 교수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앞으로도 주어진 사명이라 생각하고 예수재를 널리 알려 중생 구제와 포교에 전념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는 음력 9월9일인 10월 4일 봉행 되는 청련사 생전예수재와 불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는 10월 4일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봉행하는 청련사 생전예수재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지정 후 처음으로 설행하는 중요한 법석입니다. 이번에는 청련사 예수재를 소개하는 책자도 만들 예정입니다. 예수재의 의미를 불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준비 중입니다. 또한, 예수재에는 경기도지사, 양주시장, 양주 시의회 의장, 지역 국회의원, 기관장 등과 불교계 언론 및 일반 언론 기자들도 초청해 한국불교문화의 정통 법맥을 잊는 청련사 생전예수재의 신성함과 예술적 아름다움을 널리 알릴 예정입니다.
많은 분이 동참하시어 삼세의 업장을 소멸하는 기회를 누리시기를 서원합니다.
끝으로 저는 불자들에게 “은혜는 대리석에 새기고, 원수는 모래밭에 새기라”는 법문을 자주 합니다. 은혜를 입으면 다 갚지는 못하지만, 대리석에 새긴 것처럼 잊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안 좋은 인연으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상처는 바람이 불면 사라져 버리는 모래밭에 새겨 빨리 잊어버리라 말합니다. 원한은 모든 것이 나로 인해 발생하는 악업입니다.
이를 그대로 가지고 간다면 그것은 독이 되어 나를 병들게 합니다. 흐르는 물처럼 본래 부처인 우리는 모든 인연 공덕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죽으면 사대로 돌아가 다시 인연 받은 몸으로 태어나는 것이 부처님의 이치입니다. 마음속에 모든 먼지는 털어버리고 순수 본래의 마음으로 부처님을 맞이하는 예수재에 동참하시는 것도 권해드립니다. 부처님의 인연 공덕으로 많은 불자가 현생의 빚을 모두 청산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편집. 정리=김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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