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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종보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3. 4. 17. 17:31

한민족의 큰 명절 『설』 그 의미와 유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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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법이 들어오기 이전부터 우리 민족은 고유의 역법으로 명절을 지냈다.

 

설날의 의미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본래 설날은 조상 숭배와 효()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선대 조상과 자손이 함께 하는 아주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대부분이 도시 생활의 굴레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 설날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곧 도시 생활 오는 긴장감과 강박감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게 된 다. 설날은 세속의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옮겨가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평소의 개인적인 세속 생활을 떠나서 조상과 함께 하며 정신적인 유대감을 굳힐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이 바로 설날인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국가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설날은 아주 의미 있는 날이다. 국민 대부분이 고향을 찾아 떠나고, 같은 날 아침 차례를 올리고, 또 설빔을 즐겨 입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같은 한 민족이라는 일체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볼 때도 설날이 가지는 의미는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설날의 어원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세 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먼저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 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설날은 묵은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전이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謹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이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다. 한편 설날은 원일(元日),원단(元旦),정조(正朝),세수(歲首),세초(歲初세시(歲時연두(年 頭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불린다.

 

 

 

설날의 유래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역법(曆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가 나름대로의 역법을 가지고 있었음은 중국인들도 진작 인정하고 있었다.삼국지 (三國志)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造曆)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단순한 중국 역법의 모방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졌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신라의 독자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가위[嘉俳]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 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을 가능성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는 중국 전래의 태양태음력이나 간지법(干支法) 이외에 우리 고유의 역법 제정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다.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정월 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의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제36대 혜공왕(765780) 때에 오묘(五廟: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고려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설날의 민속놀이

 

 

고싸움놀이

 

전남 광산군 대조면 질석리 윳돌 마을에서 매해 음력 정월 10일경부터 2월 초하루에 걸쳐서 벌이던 놀이다.

큰 줄을 꼬아 앞쪽에 고를 짓고 이것을 양쪽에서 밀어서 부딪게 한 다음 상대방의 고를 땅에 내려뜨린 쪽이 이기게 된다. 이 놀이의 유래에 대해 마을 주민들은 윷돌 마을이 황소가 쭈그리고 앉은 와우상이라 터가 거세기 때문에 이를 풀어주기 위해 시작하였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속설은 전남 일대의 큰 마을마다 퍼져있는 이야기이다. 고싸움놀이를 줄다리기 놀이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먼저 어린아이들의 고싸움으로 시작하여 다음날에는 청소년들 그리고 본격적으로 청년들의 고싸움으로 커가며 마을 간의 대항전을 벌인다.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33호로 지정되었다.

 

 

 

 

널뛰기

 

부녀자들의 대표적인 놀이로 전국에 고루 분포하며 음력 정초를 비롯해 단오 한가위 등 큰 명절에 행해진다.

마당에 짚이나 가마니로 널밥을 만들어 놓고 기다란 널판을 얹어놓고 두 사람이 널의 양편에 각각 올라서서 널을 뛰는 놀이 이다. 널뛰기의 유래에 대해서 다만 그 놀이의 형태나 성격으로 미루어 폐쇠적 여성관이 자리 잡기 전인 고려 이전부터 전승되어 온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시대의 여성윤리는 가능한 한 여성들의 자연스러운 몸놀림을 억제하였는데 이러한 시대에서의 널뛰기는 비인간적 제약 아래에 있던 여성들에게 하나의 탈출구였다.

 

연날리기

 

연날리기는 세계 곳곳에서 신분 연령의 구별 없이 즐겨오는 놀이다. 대가지를 가늘게 잘라서 연살을 만들고 종이를 붙여 연을 만들고 살에 매어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날린다. 때로 다른 사람과 서로 연실을 부며 끊는 연싸움을 하기도 한다. 연을 날릴 때 송액영복 이란 글자를 써 붙이는데, 이것은 질병 사고 흉년 등 나쁜 액운은 멀리 사라지고 복이 오도록 비는 마음에서 이다. 우리나라에서 연날리기가 널리 민중에게 보급된 것은 조선시대의 영조 때라고 한다. 영조왕은 연날리기를 즐겨 구경했고 또 장려하였다고 한다. 정월에 연날리기가 성행하게 된 이유는 사계절 중이 때가 연날리기에 가장 적당한 바람 인 북서풍 이 부는 계절이다.

 

 

팽이치기

 

겨울에 시내 아이들이 얼음판위에서 많이 하는 놀이로 도래기치기라고도 한다. 팽이에는 아래쪽은 뾰족하게 깎고 위는 평평하게 깎아 만든 보통 팽이와 위, 아래 모두 뾰족하게 깎아 만든 불팽이가 있다. 얼음판이나 땅바닥에 손으로 팽이를 돌린 다음 가는 막대기에 헝겊 또는 삼실을 달아 만든 팽이채로 쳐서 세게 돌리는데 여러 아이들이 저마다 팽이를 힘껏 친 후 일제히 팽이채를 거두고 가장 오래 가는 팽이를 장원으로 뽑는다. 지금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추억의 놀이가 되었다.

 

자료정리 = 김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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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종보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3. 4. 17. 17:29

총지종 사회복지재단 일원 어린이집 위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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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1일부터 정식 운영

 

불교총지종 사회복지재단이 서울 일원어린이집 운영을 위탁받았다. 총지종 사회복지재단은 130일 서울시 강남구청의 엄격한 자격 심사를 거쳐 오는 228일까지 밀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일원어린이집의 새로운 운영 단체로 불교총지종 사회복지재단을 지정했다. 정식 운영 계약 체결은 31일 강남구청에서 열린다.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 321번지에 위치한 일원어린이집은 199691일 개원하였다. 현재 하재희 원장 외 교사 13명과 종사원등 총 16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로서 총지종 사회복지재단은 서울시 강남구에만 두 곳의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되었다. 총지종이 구현하는 생활의 불교화와 복지운영에 대한 종지를 다시 세우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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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종보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3. 4. 17. 17:19

불교총지종 제106주년 원정대성사 탄신대제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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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주년 원정대성사 탄신대제 봉행

 

*사진=훈향정공하는 서울, 경인 교도들

-종조님의 대원을 이어받아 화합종단의 기틀을 마련하자.

불교총지종 종조 원정 대성사 제106주년 탄신대제가 129일 원정기념관과 전국의 사원에서 일제히 봉행되었다. 효강 종령예하를 모시고 서울 경인교구 스승과 교도, 유가족 대표 등 약 300여명이 참석한 이날 법회는 개식사에 이어 스승 및 교도들의 헌화와 훈향 정공에 이어 효강 종령 예하는 고유문을 통해 만다라 세상에서 펼쳐지는 저희들의 작은 불사를 벅차고 환희한 마음으로 맞이하고 있습니다. 일체만법은 모두가 법신불의 당체설법 아님이 없사옵니다. 부처님의 따사로운 자비로 늘 부처님 품안에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 수행하는 자세로 살아감이 불제자의 도리인 줄 아옵니다.”며 원정 대성사의 탄신으로 정통밀교를 이 땅에 세운 큰 뜻을 찬탄했다.

인성 총무부장은 봉행사에서 밀법홍포의 대원을 저희 제자들에게 부촉(咐囑)하시며 세연을 다하고 입적하신지 사반세기가 지나 지금 이렇게 종조탄신 법회를 봉행함에 있어 돌이켜 생각해보니 원정 대성사님의 큰 뜻을 저희 제자들이 십분의 일도 따르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 감출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를 빌어 원정 대성사님의 대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종단은 종조님의 사상과 교상의 연구에 매진하여 종조님께서 제창하신 재생의세의 정신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선 총지종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용맹정진할 것을 다짐합니다. 종조님께서도 저희들을 광명의 빛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지심으로 발원하옵니다.”며 종조님의 대원을 되새겼다.

김은숙 서울. 경인 신정회장은 복지구족하신 부처님과 대비원력 깊으신 종조님께서 다툼과 미움, 시름과 절망으로 어두워진 이 미망의 사바에 하루 속히 대 비로자나 부처님의 영원한 진리와 깨달음의 빛을 밝혀 주옵소서며 종조님 전에 간곡히 발원하였다.

서울.경인 마니 합창단의 축가를 끝으로 제106주년 원정 대성사 탄신대제를 마쳤다. 법회 후에는 효강 종령예하를 비롯하여 동참한 스승 교도들은 원정기념관에 전시된 종조님의 유품들을 관람하며 평소 검소한 생활과 수행정진에 한 치의 물러섬이 없던 모습을 되새겼다.

원정기념관=김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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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종보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3. 4. 17. 17:16

총기42년 불교총지종 신년하례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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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체대비의 사상으로 모두가 부처 되는 한 해가 되기를

 

*사진설명: 총기42년 불교 총지종 신년하례법회

-115일 총본산 총지사에서 300여명 동참

총기42년 계사년 신년하례법회가 총기 42(2013)115일 오후 1시 총본산 서울 총지사에서 열렸다. 이날 법회는 효강 종령예하를 모시고 지성 통리원장과 종단 집행부를 비롯한 각 사원의 주교, 기로스승 및 교도들이 동참 했다. 인선 총무부장의 집공으로 열린 법회는 원정기념관 참배를 시작으로 종령 예하의 헌화, 승단 하례, 교도일동 하례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효강 종령예하는 법어에서 부처님의 동체대비 사상은 모든 중생이 한 뿌리에서 태어나, 각자의 만다라 세상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나와 중생과 부처가 하나라는 삼평등의 진리를 가슴에 새기고, 자신이 가진 재물, 지식, , 염송공덕을 모두에게 베푸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모든 중생을 대할 때, 부처님 대하 듯 하면 미운과 원망은 사라지고, 번뇌의 사슬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또한 올해는 12간지 중 뱀의 해입니다. 뱀은 성장을 위해 허물을 벗는 동물입니다. 우리도 뱀이 허물을 벗듯이 번뇌 망상과 원망을 버리고 새로 태어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며 계사년 새해 다짐을 설했다.

 

지성 통리원장은 새해 불공을 용맹 정진으로 마치신 스승과 교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계사년에도 서원하신 모든 계획들이 원만히 이루저지시기를 서원합니다.”며 인사말을 했다.

 

기로스승 진원식

 

신년하례법회 후에는 기로스승 진원식이 이어졌다. 이번에 기로스승으로 진원된 선립사 심지장 전수, 삼밀사 원송 정사, 삼밀사 인법계 전수, 실지사 연등원 전수는 효강 총령예하에게 가사를 반납하고, 새로이 기로스승 금가사를 수여 받았다. 효강 종령 예하는 법어를 통해 그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종조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수행정진과 교화에 매진하신 스승님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며 새로 진원한 기로 스승님들을 치하했다

 

 

동체대비의 사상으로 모두가 부처 되는 한 해가 되기를

-115일 총본산 총지사에서 300여명 동참

총기42년 계사년 신년하례법회가 총기 42(2013)115일 오후 1시 총본산 서울 총지사에서 열렸다. 이날 법회는 효강 종령예하를 모시고 지성 통리원장과 종단 집행부를 비롯한 각 사원의 주교, 기로스승 및 교도들이 동참 했다. 인선 총무부장의 집공으로 열린 법회는 원정기념관 참배를 시작으로 종령 예하의 헌화, 승단 하례, 교도일동 하례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효강 종령예하는 법어에서 부처님의 동체대비 사상은 모든 중생이 한 뿌리에서 태어나, 각자의 만다라 세상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나와 중생과 부처가 하나라는 삼평등의 진리를 가슴에 새기고, 자신이 가진 재물, 지식, , 염송공덕을 모두에게 베푸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모든 중생을 대할 때, 부처님 대하 듯 하면 미운과 원망은 사라지고, 번뇌의 사슬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또한 올해는 12간지 중 뱀의 해입니다. 뱀은 성장을 위해 허물을 벗는 동물입니다. 우리도 뱀이 허물을 벗듯이 번뇌 망상과 원망을 버리고 새로 태어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며 계사년 새해 다짐을 설했다.

 

지성 통리원장은 새해 불공을 용맹 정진으로 마치신 스승과 교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계사년에도 서원하신 모든 계획들이 원만히 이루저지시기를 서원합니다.”며 인사말을 했다.

 

기로스승 진원식

 

신년하례법회 후에는 기로스승 진원식이 이어졌다. 이번에 기로스승으로 진원된 선립사 심지장 전수, 삼밀사 원송 정사, 삼밀사 인법계 전수, 실지사 연등원 전수는 효강 총령예하에게 가사를 반납하고, 새로이 기로스승 금가사를 수여 받았다. 효강 종령 예하는 법어를 통해 그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종조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수행정진과 교화에 매진하신 스승님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며 새로 진원한 기로 스승님들을 치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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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과 소통의 메신져로 더 힘찬 한해를

 

3회 총지종보 전국 통신원 워크샾이 1214일부터 15일까지 대전 만보사와 유성온천 일원에서 열렸다. 눈이 내리는 굿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20여명의 통신원들이 만보사로 모여들었다. 충청. 전라 교구장 법우 정사, 만보사 주교 승원 정사, 백월사 인지심 전수, 만보사 묘원화 전수 및 충청. 전라 신정회 민순분 회장, 만보사 정유내 보살, 만보사 유복근 통신원이 전국의 통신원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일년 만에 다시 모인 종보 통신원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법우 정사의 유쾌한 특강

 

만보사 주교 승원 정사의 집공으로 봉행된 입제식은 총지종 교화발전과 종보 통신원 워크샾원만을 서원하며 비로자나 부처님께 불공을 올렸다. 집공을 마친 만보사 주교 승원정사는 인사말을 통해 종보의 발전을 위해 각 지역 사원에서 고군분투하시는 통신원 여러분 들게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통신원 워크샾을 이 곳 만보사에서 개최하게 되어 주교로서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며 개최를 축하하며, 원만이 모든 행사가 진행되기를 서원했다.

이어 김종열 기자의 사회로 개회식이 열렸다. 충청.전라 교구장 법우 정사는 인사말을 통해 종보 통신원 워크샾이라는 뜻 깊은 행사를 충청. 전라교구의 대전 만보사에서 개최하게 되어 교구를 맡고 있는 교구장으로서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통신원들은 통신원이라는 한정된 역할 뿐만이 아니라 각 사원의 주도적인 역할들을 솔선수범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교화의 주인공입니다. 아무쪼록 아무 탈없이 통신원 워크샾이 원만 회향하기를 비로자나 부처님 전 서원 합니다.”며 전국에서 모인 통신원들을 환영했다.

지성 통리원장은 총무과장 서강 정사가 대독한 격려사를 통해 벌써 종보를 창간한지도 1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효강 종령님 통리원장 시절에 창간된 총지종보는 그동안 종단의 여러 현안과 불교계의 다양한 소식을 교도들에게 전하는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교도들의 지대한 관심과 여러 스승님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오늘 대전 만보사에서 개최되는 제3회 총지종보 전국통신원 워크샾에서는 각 지역과 사원을 대표하는 통신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종보의 편집방향과 앞으로 어떤 신문으로 발전하면 좋은지를 허심탄회하게 토의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종보를 취재, 편집 제작하는데 바로 반영되도록 하겠습니다.”며 종보의 새로운 발전 방향을 함께 논의해 줄 것을 당부 했다.

충청.전라 교구 지회장인 민순분 회장은 멀리서 찾아주신 통신원 여러분들을 교구의 모든 교도들을 대표해서 환영인사를 드립니다. 계시는 동안 평안하시고, 좋은 결과를 안고 각자의 사원으로 돌아가시기를 서원합니다.”며 통신원들을 격려했다.

잠깐의 티 타임으로 추위를 녹이고, 워크샾 특강이 이어졌다. 종단의 교육위원이기도 한 충청. 전라 교구장 법우 정사의 생각을 바꾸자라는 주제로 약 한 시간가량 특강이 있었다.

특강에서 법우정사는 사람이 한 생각 바꾸면, 사는 이곳이 바로 극락이요 즐거움의 연속이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며 강의 내내 적절한 비유와 유머로 특강의 주제를 통신원들의 가슴깊이 새겼다.

이어 김종열 기자의 종보 현황 방향과 오늘 논의해야 할 주제 등에 대한 간략한 보고를 마친후 만보사에서의 행사를 마무리 했다. 인근 토속 음식점에서 저녁 공양을 한 후 숙소인 유성 온천지구로 향했다.

 

밤을 잊은 열띤 토론

 

숙소인 경하온천호텔에 여장을 푼 통신원들은 먼저 온천욕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저녁 830분 한방에 모인 통신원들은 종보 발전을 위한 자유 토론을 시작했다.

먼저 편집위원회를 대표해서 이인성 회장이 추운 날씨에도 먼 곳 같지 찾아주신 통신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지난 한해 총지종은 많은 행사를 통해 대, 내외적인 위상을 높이 올리는 한해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행사가 원만 성취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통신원 여러분들의 노력도 한 몫 했다고 생각됩니다. 내년에도 더 열정적인 활동으로 종보 발전에 이바지 해 주시기를 서원합니다.” 인사말을 했다. 이어진 자유토론에서는 종보의 사진 설명이 없어 나이 드신 노 보살님들이 사진을 이해하기 힘들다. 내년도 편집부터는 사진설명을 넣자.” 는 의견과 각 사원에서 올라오는 기사는 통신원 취재를 바탕으로 기자가 보충정리하고, 통신원 기명기사로 나가자.” 그리고 전년도 계획했던 분기별 지역 탐방이 종단의 행사 등과 겹쳐져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올해는 미리 일정을 정해 어려움이 있더라도 시행하자. 일 년에 두 번 정도 모임을 같고 한번은 공동취재로 5월 중에 시행하고, 워크샾은 11월중 시행하는 것으로 했다. 또한 각 사원과 교구의 조그마한 행사도 직접 취재가 불가능하면 기자를 요청하는 방안도 했다. 자유 토론은 밤 12시가 훨씬 넘어서야 자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는 통리원 서강 총무과장, 벽룡사 주교 법일 정사, 전주 흥국사 주교 지정 정사가 참석하여 통신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격려 했다.

여진미술관 탐방

 

밤새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꽃을 피운 통신원들은 아침 공양을 마치고, 불교조각장 이진형선생이 설립한 여진 미술관 탐방에 나섰다. 숙소에서 약 20분을 달려 대전시 유성구 탑립동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향했다. 약간은 흐리고 추운 날씨였지만 불교 공예의 진수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모두 가 설렌다. 잘 정비된 진입로에 들어서자 주차장 여진선원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참배를 드리고 제 1 전시시실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다. 전시실에는 삼천석가모니좌상과 석가모니 고행상,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 사천왕상, 나반존자 등 이진형 원장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전시품에는 장곡사 약사여래상과 기림사 건칠관음상, 상원사 문수동자상 등 국가지정문화재의 모작(模作)과 어린 아기 모습의 천진불, 동자상도 있다.

1618의 부지에 전시실, 수장고, 연구실, 공방(무형문화재전수교육실) 등의 시설로 이루어진 여진미술관의 설립자 이진형 선생은 총지종 통신원들을 위해 직접 불상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제작 시연 까지 해, 평생 한번 만나기 힘든 불모의 작업현장을 체험했다.

모든 아쉬움을 뒤로하고, 동학사 사하촌에서 점심 공양을 한 뒤 각자의 사원으로 출발했다.

끝까지 자리를 함께해준 서강 정사님, 법일 정사님, 민순분 회장님, 정유내 보살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충청전라 모든 교도들에게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가 원만하기를 서원한다.

 

참석 하신 분

스승님=법우 정사, 법일 정사, 지정 정사, 서강 정사, 인지심 전수, 묘원화 전수

대전. 충청교구= 민순분 회장, 정유내 보살

편집위원= 이인성, 최영아, 박정희, 강경민

통신원= 김옥임, 장경임, 권순복, 유복근, 김경숙, 김경인, 오인숙, 고지현, 한경림, 여순애

진행= 장동욱 계장, 배공주 교무, 김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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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종보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3. 4. 17. 17:03

계사년 특집 민속에서 찾아본 뱀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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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 재생, 영생의 상징 지신(지신)

 

 

 

 

 

계사년(癸巳年) 올해는 뱀의 해이다. 동양의 역법에 의하면 뱀()12지의 여섯 번째이고 육십갑자에서 을사(乙巳), 기사(己巳), 계사(癸巳), 정사(丁巳), 신사(辛巳) 5번 순행한다. ()은 시각으로는 9시에서 11, 방향으로는 남남동, 달로는 음력4월에 해당한다.

한국인의 12분의 1은 아마도 뱀띠일 가능성이 있기에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뱀과 연관을 맺고 살고 있다. 조선후기부터 민간에 크게 유행한 당사주에는 뱀띠는 용모가 단정하고 학업과 예능에 능하며 문무를 겸비하였다고 쓰여 있다. 십이지 동물로서 뱀은 다른 십이지 동물에 뒤지지 않는 대접을 받고 있었으며 인간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운명을 같이하는 친숙한 존재였다.

파충류인 뱀은 일상생활에서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거나 흉물로 배척당하지만 민속신앙에서는 신적 존재로 위해지면서 일찍부터 다양한 풍속이 전승되고 있다.

뱀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다. 땅에 가장 많이 몸을 대고 살기에 땅과 밀접하며 냉혈동물이고, 독을 품고 있어 두렵다. 그런가 하면 뱀이 크면 구렁이가 되고, 이 구렁이가 더 크면 이무기가 되며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거나 어떤 계기를 가지면 용으로 승격한다는 민속체계가 있다. 뱀의 범주에는 이무기, 구렁이, 뱀이 다 포함된다.

뱀은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성장할 때 허물을 벗는다.이것이 죽음으로부터 매번 재생하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불사(不死)재생(再生)영생(永生)의 상징으로 무덤의 수호신, 지신(地神), 죽은 이의 새로운 재생과 영생을 돕는 존재 인식했다. 또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 뱀의 다산성(多産性)은 풍요(豊饒)와 재물(財物),가복(家福)의 신이며, 뱀은 생명 탄생과 치유의 힘, 지혜와 예언의 능력, 끈질긴 생명력과 짝사랑의 화신으로 문화적 변신을 하게 된다. 우리가 뱀을 각기 문화적 맥락 속으로 상징화할 때 생긴 문화적 오해 때문이다.

 

<법화경>은 뱀의 길다란 형태와 삼각형 머리를 남근의 형태나 성적 기교로 해석해 애욕의 뿌리로 보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뱀을 '업구렁이'라 해서 신성시하였다. 구렁이가 집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재물을 내려준다 해서 길조로 여겼다. 물론 죽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업구렁이가 집에서 나갈까 보아 걱정을 하면서 잘 모셨다. 따라서 '구렁이'라 부르지도 않고 '지킴' 또는 '지킴님'이라고 높여 불렀다. '구렁이'라 부르는 것은 금기(禁忌)였던 것이다. 이건(李建)<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에 보면, "풀이 무성하고 습기가 많을 때는 뱀이 규방이나 처마, 마루 밑, 자리 아래 어디서나 기어들어와 잠잘 때 피하기가 어렵다. 섬사람들은 뱀을 보면 '부군신령(府君神靈)'이라 하여 쌀과 맑은 물과 술을 뿌리면서 빌고, 죽이지를 않았으며, 만일 뱀을 죽이면 재앙이 내려 발굼치도 움직이지 못하고 죽는다고 알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뱀은 중국에서도 신으로 모셨다. 복희씨와 여와씨(女窩氏)는 뱀 몸뚱이에 사람의 얼굴이 린 형상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물의 신(河神)의 모습도 뱀이라고 믿었다. 일본인들도 뱀 자체를 시조신으로 여긴다. 일본을 건국한 천조대신(天照大神)의 동생 소전명존(素箋鳴尊)은 머리가 여덟 달린 뱀의 몸에서 칼을 꺼내 나라를 지키는 보검으로 삼았다. 이것이 일본 3대 국보의 하나로 전해지고 있는 천총운검(天叢雲劒)이다. 희랍신화의 최초 인간은 케크로스라는 뱀이고 헤브라이신화의 첫 여자 에와도 뱀이었다. 그리스 신화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이다. 이 의술신의 딸이 들고 다니는 단장에는 언제나 한 마리의 뱀이 둘둘 말려 있었다. 이 뱀은 의신의 신성한 하인이었고, 해마다 다시 소생하여 탈피함으로서 새로운 정력을 소생시킨다는 스태미너의 심벌로 간주돼 왔다. 지금도 군의관의 뺏지는 십자가 나무에 뱀 두 마리가 감긴 도안이고, 유럽의 병원과 약국의 문장은 치료의 신, 의술의 신을 상징하는 뱀이다.

한편 뱀은 민간의료의 약용으로도 쓰인다. 약용으로 쓰는 뱀은 주로 살모사, 구렁이, 칠점사, 독사, 독뱀 등이다. 뱀은 정력강장 작용을 하고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 하강작용을 하며, 일체의 허약성으로 오는 질환에 사용된다고 알려졌다. 뱀허물도 중요한 약재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산림경제(山林經濟)등에서도 뱀 허물이 약재로 쓰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뱀허물이 정창, 모든 상처에 파리와 구더기를 없애는데, (胞衣)가 나오지 않을 때, 경풍(驚風) 등이 쓰인다고 했다

현실 속에서의 뱀의 부정적인 인상에도 불구하고 상상 세계는 뱀의 주무대이자그 무대의 주인공이었다. 십이지 동물 가운데 뱀처럼 상상의 세계에서 많은 이야기를 가진 동물도 없었다. 한국 설화 속에서 뱀은 인간의 여러 얼굴을 보여주는 대리자로서 인간 내면의 여러 요소가 기묘한 동물인 뱀의 입과 몸을 빌려서 나타난다. 설화 속에서 뱀은 은혜를 갚는 선한 존재로, 복수의 화신으로, 때로는 탐욕스런 절대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오래 묵은 구렁이인 이무기는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고 싶은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기다리는 인내의 상징이다. 또한 저승 세계에서 뱀은 악인을 응징하는 절대자로 나타나며, 악한 사람은 뱀이 되어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올해는 육십갑자의 계사로 검은 에 해당하는 계()와 뱀을 상징하는 사() 합쳐져 의미상으로 검은 뱀 흑사의 해이다. '()'에는'식물이 싹이 터서 한참 자란 시기'라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 모두가 과거의 허물을 벗고 참 불자로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되는 한해가 되기를 서원한다 . 김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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