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지정 제2000호에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 지정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와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 등 조선 시대 회화와 불교 조각, 서책 등 4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특히 보물 지정호수가 드디어 2000호를 돌파했다. 이는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문화재청은 1962년 12월에 서울 숭례문(국보 제1호) 등 116건을 국보로, 1963년 1월에 서울 흥인지문(보물 제1호) 등 423건을 보물로 일괄 지정한 이후 현재까지 총 336건의 국보와 총 2,132건의 보물을 지정했다.
진도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이번에 지정된 불교문화재인 보물 제1998호 「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珍島 雙溪寺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은 17세기 중엽 전라‧경상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조각가 희장(熙壯)을 중심으로
총 9명의 조각승이 공동으로 참여해 1665년(현종 6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가운데 석가모니불상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각 1구의 보살상으로 구성된 삼존(三尊) 형식이다.삼존의 보존 상태와 구성 등이 조성 당시의 모습을 거의 완전하게 갖추고 있으며, 복장(腹藏) 유물 역시 안치 당시의 모습에서 크게 훼손되지 않고 발견되어 17세기 복장법식(腹藏法式) 연구의 중요한 정보이다. 또한, 건장한 신체 표현과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어린아이 같은 얼굴 등 희장이 참여한 불상조각의 특징을 엿볼 수 있으며, 제작연대와 제작자, 봉안처(奉安處) 등 조성 과정에 대한 학술 정보를 잘 구비하고 있어 17세기 불교조각사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구 동화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보물 제1999호 「대구 동화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大邱 桐華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像)」은 높이 2m 이상의 대형 불상조각으로, 17세기에 가장 비중 있게 활동한 조각승인 현진(玄眞)의 작품이다.
좌상의 아미타불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관음보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을 배치하였는데 좌상과 입상이 삼존에 모두 등장한 것은 이 시기 삼존상으로는 드문 구성이다. 관음보살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發願文)을 통해 현진을 중심으로 5명의 조각승이 참여하여 1629년(인조 7년)에 조성한 사실이 밝혀졌다.이 불상은 온화한 얼굴과 무게감 있는 신체 표현 등 현진의 개성을 잘 보여주며, 17세기 전반 목조 불상 중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하는 작품이다. 또한, 조각가, 제작 연대, 봉안사찰과 전각 등에 대한 온전한 내력을 갖추고 있고, 조각승 현진이 제작한 불상 중 유일하게 좌상과 입상으로 구성된 작품이라는 점, 시대적 조형감각이 잘 표현되어 있어 예술적․학술적 가치 등 모든 면에서 17세기를 대표하는 사례이다.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
보물 제2000호의 영예를 안은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金弘道 筆 三公不換圖:전원생활의 즐거움을 삼공(三公)의 높은 벼슬과 바꾸지 않겠다는 의미로, 송나라 시인 대복고(戴復古)의 시 ‘조대(釣臺)’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는 김홍도(金弘道, 1745~1806년 이후)가 57세 때인 1801년(순조 1년)에 그린 8폭 병풍 그림으로, 1801년 순조의 천연두 완쾌를 기념하여 만든 4점의 병풍 중 한 점이다.
경물을 옆으로 비스듬하게 배치한 사선(斜線) 구도를 활용해 역동감을 주었고, 강을 앞에 두고 산자락에 자리한 큰 기와집과 논밭, 손님치레 중인 주인장, 심부름하는 여인, 일하는 농부, 낚시꾼 등 여러 요소를 짜임새 있게 그려 넣어 전원생활의 한가로움과 정취를 표현하였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인물들의 모습, 실물 그대로를 묘사한 듯한 화풍이 돋보이며, 오랜 작품 생활을 통해 숙련된 자유분방한 필치로 화면 전체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 그림은 중국 고전에 기초해 김홍도 나름으로 조선 백성들의 생활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김홍도 말년의 창작활동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인물, 산수 등 여러 분야에 두루 뛰어났던 그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역작이다.
자치통감 권 129- 132
보물 제1281-6호 「자치통감 권129~132(資治通鑑 卷一百二十九~一百三十二)」는 1436년(세종 18년)에 간행한 『자치통감(資治通鑑)』의 판본 가운데 권129~132에 해당하는 책이다.
처음 간행 당시에는 금속활자인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로 찍어 총 294권 100책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편찬했으나, 이때 인출(印出, 책을 찍어냄)한 책은 아직 전체 권수가 실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자치통감 권129~132’는 인출(印出) 발문이 없으나, 지정된 다른 자치통감과 비교했을 때 경복궁 사정전(思政殿)에서 편집하고 1436년 주자소에서 간행한 판본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책에 속한 권129와 권130은 처음 확인된 내용이라는 점에서 『자치통감』의 전체 현황을 파악하고 조선 전기 인쇄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김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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