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지종보' 카테고리의 글 목록 (8 Page)불교인사이드
총지종보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3. 4. 17. 16:50

전국 기로스승 총회. 11월20-22까지 속초에서

반응형

종단 교화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하는 최고의 자리

 

 

종단 기로 스승들이 종단발전을 위한 세미나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1120일부터 22일까지 강원도 고성군 대명콘도에서 총기41년 전국기로스승총회가 열렸다. 효강 종령예하를 비롯한 30명의 기로스승들은 종단 대형버스로 이동 여장을 풀고, 먼저 설악산 권금성을 케이블카로 올라 깊어가는 가을의 마지막 정취를 감상했다. 속초 대선항으로 이동하여 저녁 공양을 한 후, 척산온천에서 여정의 피로를 풀었다. 총회 이튿날에는 화진포 일대를 관불한 후, 통일전망대 통일대불에서 남북통일을 위한 서원불공을 오렸다. 기로스승들은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백두에서 한라까지 총지 밀법의 진리가 전해지기를 서원했다. 비무장지대 안 건봉사 참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기로스승들은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효강종령 예하의 입장과 통리원을 대표해 지성 통리원장과 인선 총무부장이 참석했다. 간단한 상견례를 마치고, 집행부를 대표해 지성통리원장은 오늘 같이 종단의 여러 스승들을 모시게 되어 참으로 영광스럽습니다. 이 자리의 스승님들이 교화의 일선에 계실 때, 종단은 장종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현재 약간의 정체된 모습에 집행부를 대표하고, 후배 정사로서 죄송스럽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따끔한 질책과 성원의 법문을 내려주십시오인사말을 했다.

이어 효강종령 예하는 종단의 어려운 사정에도 이번 자리를 만들어 준 통리원 집행부에 감사드린다. 이렇게 설악산에서 기로스승 만이 모인 건 처음이다. 종단 초기 그 어려운 시절을 잘 이끌어 나간 것은 모두가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 불공과 교화의 덕입니다.”요즈음 들어 우리 종단에 좋은 소식들이 있습니다. 지난 5회를 우리 종단 주관아래 개최하였던 국재재가불자대회가 이번에 스페인에서 대단한 규모로 열렸습니다. 우리 대표단 4명이 가보니 우리 총지종이 한국 최고의 종단으로 인식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우도 최고로 받았답니다. 또한 이번에 처음으로 참가한 일본의 입정교성회에서는 내년도 대회를 자진해서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40여 년 전 종단을 창종하신 원정대성사의 셰계불교로의 참뜻이 오늘에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국내 교화도 중요하지만 세계교화라는 과제를 이미 우리에게 던져 주신것입니다. 바로 종조님의 뜻이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지속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 종풍 운동을 통해 이루어야 합니다. 최근 종비생으로 공부하신 분들과 염송정진에 대한 실천적 체험을 체계화 하는 과정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기로스승 여러분들이 모범이 되어 후진들을 이끌어 주시고 가끔 적 적극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며 최근 종단의 상황에 대해 유시하셨다.

 

종단 기로스승들은 그동안 경험은 교화의 방법과 종단 발전 방안에 대해 많은 의견들을 제세했다. 가장 먼저 나온 얘기가 바로 법을 바로 세우자는 의견이다. 원정대종사께서 처음 창종 할 당시의 정신으로 초발심의 각오로 종단의 종지를 바로세우고 교화의 새로운 방편을 세우자. 또한 괴산 수련원의 조속한 완공으로 집중 수행 공간 확보와 장차 총지 밀교의 본산으로서의 역할을 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 젊은 스승들이 시도하는 다양한 교화 방편은 아주 긍정적이다. 특히 이번 강공을 통해 발표한 다양한 방편들은 종단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발전 정착 시켜야한다. 일부 몇몇 스승의 자녀들이 불공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는 통리원 차원에서 강력히 요구하여야 한다는 생각들이다. 최소한 자녀들이 부모의 상례에서 열리는 추복 의궤 만큼은 알아야한다는 의견이다. 이외에도 많은 의견들이 나왔으나, 집행부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강력한 추진력을 더 요청했다.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총회는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자리를 정리했다. 통리원에서는 이날의 의견들이 종무행정 전반에 걸쳐 적극 반영하기로 했다.

 

속초=김종열 기자

 

반응형
총지종보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3. 4. 17. 16:45

편집위원이가다.(남한산성 편)

반응형

작은 궁궐; 전란을 대비한 완벽한 시설 남한산성 행궁

 

 

 

가을이 깊다. 남한산성을 오르는 좁은 2차선 도로의 양옆으로 단풍이 한창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는 느껴지 못한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을 오늘 온몸으로 느낀다. 지난 4월 호암미술관 취재를 끝으로 한동안 편집위원들이 취재를 나서기가 힘들었다. , 하반기 불공과 호국안민기원대법회, 2회 통일음악예술제까지 쉴 틈 없이 달려왔다. 이제 한 숨 돌리고 가을이 깊어가는 남한산성으로 편집위원들이 다시 모였다. 총지사에 모여 미니버스에 올라, 30분도 안되어 남한산성 한 가운데에 당도했다. 이리 가까운 곳에 자연을 한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을 왜 몰랐을까? 오늘은 남한산성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독자들에게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전해야겠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산성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한양을 지키던 최후의 보루

 

남한산성은 북한산성(北漢山城)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이다. 백제가 한강유역의 한성 백제를 온조왕의 성터라는 전설이남아있다. 본격적인 성곽은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쌓은 주장성(晝長城) 축조로부터 시작된다. 조선 인조 21624년에 지금의 형태로 축성을 본격화 한다.

남한지(南漢志)에 따르면, 원래 심기원(沈器遠)이 축성을 맡았으나 그의 부친상으로 인하여 이서(李曙)가 총융사(摠戎使)가 되어 공사를 시작하였다. 공사의 부역(賦役)은 주로 승려가 맡았다. 4()8암문(暗門)이 있으며 성안에는 관아(官衙)와 창고 및 국가의 유사시에 대비하여 모든 시설을 갖추었고, 7개의 절까지 세웠으며,16267월에 공사를 마쳤다. 이후에도 순조 때에 이르기까지 성내의 시설 확장은 계속되었다.

임금이 거처할 행궁(行宮)은 상궐(上闕) 73() , 하궐(下闕) 154간 이었다. 재덕당(在德堂)은 숙종 l4년에 세웠고, 1711년에는 종묘를 모실 좌전(左殿)을 세웠다. 그리고 사직단(社稷壇)을 옮길 우실(右室)도 세웠다. 한마디로 작은 궁궐을 옮겨 놓았다. 1624년에 건립된 객관(客館:人和館)1829(순조 29)에 수리되었다. 관아로는 좌승당(坐勝堂), 장각(日長閣), 수어청(守禦廳), 제승헌(制勝軒)이 건립되었다. 군사기관으로는 비장청(裨將廳), 교련관청(敎練官廳), 기패관청(旗牌官廳) 등을 비롯하여 종각(鐘閣), 마랑(馬廊), 뇌옥(牢獄),등이 들어서 유사시 군 사령부 역할을 하였다.

 

불법과 나라를 같이 지켜낸 승군(僧軍) 최고 사령부

 

남한산성에는 유사시 나라를 지키는 승군을 총괄하는 승도청(僧徒廳)이 자리했다. 팔도 승군을 총괄하는 관청으로, 나라가하면 분연히 일어나 창을 드는 성군(聖軍)으로서의 불교도와 스님들의 힘은 대단히 컸다.

남한산성의 축성에도 승려 각성(覺性)이 도총섭(都摠攝)이 되어 8도의 승군(僧軍)을 동원하였다. 이들의 승군의 수행과 거처를 위하여 예전부터 있던 망월사(望月寺), 옥정사(玉井寺) 외에 개원(開元), 한흥(漢興), 국청(國淸), 장경(長慶), 천주(天柱), 동림(東林), 동단(東壇)의 일곱 개의 사찰(寺刹)이 창건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장경사만이 남고, 나머지는 폐사지로 사적으로 지정 되어 있다.

남한산성의 수비는 처음에는 총융청에서 맡았다가, 성이 완성되자 수어청이 따로 설치되었다. 여기에는 5()이 소속되었는데, 전영장(前營將)은 남장대(南將臺), 중영장은 북장대에, 후영장과 좌영장은 동장대에, 우영장은 서장대에 진()을 쳤다. 현재는 서장대(수어장대,守禦將臺라고도 함) 하나만이 남아 있다. 장대는 높은 섬돌 위에 2층으로 지었는데, 아래층은 정면 5, 측면 3칸이고, 위층은 정면 3, 측면 2칸이다. 지붕은 팔작(八作)이며 겹처마에 위층은 판문(板門)으로 막았으나 아래층은 개방되어 있다. 성문은 홍예문(虹霓門) 위에 성가퀴를 두르고 단층(單層) 문루(門樓)를 올려 세웠는데, 매우 당당하고 위엄이 있다.

남한산성의 축성 완성 된 뒤, 수어사(守禦使) 이시백(李時白)이 처음으로 유사시에 대비할 기동훈련의 실시를 건의하여, 1636(인조 14)12,700명을 동원하여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 해 12월에 막상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가지 여건으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성문을 열어 화의(和議)하고 말았다. 결국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쌓은 성이었으나 제구실을 하지 못한 뼈아픈 역사(役事)의 현장이기도 하다.

아픈 역사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

 

인조 171639년 조선은 청나라와의 전쟁에 패배하고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는다. 이란을 우리는 병자호란이라 부른다. 청은 인조의 굴욕적인 항복을 받아내고, 그 자리에 새운 굴욕의 비석이 바로 삼전도비. 원래의 비명은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로 이조판서 이경석(李景奭)이 글을 짓고, 글씨는 오준(吳竣), 비명(碑名)은 여이징(呂爾徵)이 썼다고 전한다. 내용은 청나라가 조선에 출병(出兵)한 이유, 조선이 항복한 사실, 항복한 뒤 청 태종이 피해를 끼치지 않고 곧 회군(回軍)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석의 한쪽 면에는 한문, 다른 쪽 면에는 만주문(滿洲文), 몽골문으로 번역되어, 하나에 3개국 문자를 사용하였다. 또한 비 머리의 이수(螭首), 받침돌의 귀부(龜趺) 조각도 정교하여 미술사적으로는 조선 후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원래는 석촌호수 주변에 세워졌으나, 그 치욕적인 의미 때문에 1895(고종 32) 매몰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일본에 의해 다시 세워지고, 1956년 문교부가 국치의 기록이라 해서 다시 땅 속에 묻었다가, 1963년에 다시 세우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다가 20104월 고증을 거쳐 최초의 위치인 석촌호수 서호 언덕으로 옮겨졌다.

어떤 나라라 하더라도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는 반면, 잊지말아야하는 치욕의 역사도 있기 마련이다. 모두가 우리의 역사이다. 최근 일본이 행하는 영토 분쟁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 인식을 바라볼 때, 역사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고민해 본다.

 

취재=편집위원 이인성, 박묘정, 박정희, 최영아, 강경민 통신원 양재범, 이형자, 김옥임

편집정리=김종열 기자.

반응형
총지종보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3. 4. 17. 15:33

제80회 추계강공회 봉행

반응형

 

참 스승의 자세로 교화의 신기원을 이루자.

 

총기 41년 불교총지종 춘계강공회가 10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통리원에서 봉행되었다. 전국의 기로스승을 비롯한 총지종 승단은 17일 통리원 인선 총무부장의 집공으로 개강불사를 봉행했다.

3.7 의궤에 이어 불교 총지종 효강 종령예하는 법어에서 참석하신 여러 스승님들은 종조님께서 강조하신 참스승의 위의와 도리를 이번 강공회를 통해 확실히 되새기는 자리여야 합니다. 불교 종단의 흥망성쇠는 승직자에게 달려있습니다. 종단의 성쇠는 승직자들의 수행 여하에 결정됩니다. 오늘 팔십 번째 강공회가 개최되는 오늘을 기점으로 종조님이 휴훈으로 남기신 참스승의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강공은 전 승단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는 자리입니다. 강공의 모든 일정을 통해 우리들의 수행력과 법력을 증장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승직자 본연의 서원은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하는 대비만행을 이루는 것입니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이번 강공을 수행하여 종단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를 바랍니다.”며 추계강공을 통해 스승 본연의 자세를 되새기기를 당부하였다.

지성통리원장은 인사말을 지난 주 봉행된 제2회 통일 음악예술제를 통해 수고해 주신 많은 스승님들과 교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강공을 통해 일어설 수 있다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기원 합니다.”며 원만한 강공이 되기를 서원했다.

이어 효강 종령 예하의 특별 정신교육이 이어졌다.(종령 정신교육 전문 5) 이번 강공은 외부 초청강사 없이 총지사 법등 정사의 밀교 연송선, 백월사 법우정사의 생각을 바꾸자, 밀교연구원 법경정사의 밀교입문, 운천사 도현정사의 불교상담심리학강의가 있었다. 강공회에 앞서 원의회, 유지재단이사회, 사회복지법인 이사회가 연석으로 열려 중앙 종회에 상정 할 안건들을 심의했다.

전국의 스승들은 토론과 발표 위주의 이번 강공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교화의 방편을 실행하기를 비로자나 부처님 전 서원 하였다. 통리원=김종열 기자

 

 

 

반응형
총지종보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3. 4. 17. 15:24

김 기자가 가다. 연꽃으로 피어난 불공의 원력

반응형

인천 지인사 신정회 홍순유 회장의 남다른 가피 이야기

 

인천에는 총지종의 두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광역시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천시 북구에서 부평구로 이름을 바꾼 이곳에 시법사, 지인사 두 사원 모두가 오랜 세월 교화의 도량으로 큰 틀을 이루고 있다.

최근 지인사에는 웃음이 넘치고 있다는 이형자 통신원의 제보를 받은 기자는 그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올해처럼 유난히 더웠던 여름을 지나면서 무슨 좋은 일인가? 한여름 더위를 불공으로 이겨내서 그런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통신원의 제보에 지인사 승효제 전수님께 사전 약속을 하고 자승일 불공 때 인천으로 차를 달렸다.

부평은 초행이라 자동차의 네비게이션이 가르쳐 주는 대로 서울 순환 고속도로를 거쳐 송내 나들목으로 진출했다. 직진과 우회전을 거쳐 골목으로 접어드니 바로 지인사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네비게이션의 잘못된 안내로 골탕을 먹은 적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그 성능에 만족했다.

여러 총지종 사찰을 방문 취재해 보았지만 지인사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깔끔하다는 느낌이다. 사원 마당을 들어서니, 여러 가지 꽃들이 만발하다. 연꽃을 피운 여러 개의 수조도 보이고, 사원의 분위기보다는 잘 가꾸진 공원에 온 느낌이다.

자승일 불공을 모두 마친 후 교도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단체 사진을 먼저 찍어드렸다. 기왕 왔으니 최소한의 서비스는 기본 아닌가? 다함께 공양을 한 후, 서원당에서 홍순유 회장과 박옥선 부회장, 최광희, 김태순 감사님과 자리를 마련했다. 김 기자는 회장님께 단도직입적으로 여쭈었다. “회장님. 지인사에 얼마나 기쁜 일이 있길래.. 서울까지 소문이 났습니까?” 회장님은 수줍은 웃음을 띄우며 우리 사원이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훨씬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정원의 꽃들이 너무 예뻐 교도들의 얼굴이 꽃처럼 환해져 그런가 봅니다.” 라 말한다. 그러면서 꽃들을 정성들여 가꾸어주신 지성정사님과 승효제 전수님의 여름동안의 노고에 감사했다. 그런데 옆에 계시던 박옥선 부회장이 진짜 경사는 회장님 댁에 있습니다.”회장님 아드님이 이번에 소령으로 진급했습니다. 이보다 더 큰 경사가 어디 있습니까?” 김 기자의 귀가 번뜩였다. “아 그런 경사가 있었군요.”

홍순유 회장님의 아들은 이 나라 국방을 책임지는 대한민국의 육군 장교였다. 홍순유 회장의 아들 강인식 소령은 12녀 중 막내로 대학을 졸업하고 ROTC로 임관해 직업군인의 길을 가고 있었다. 어린 젓 먹이 때부터 회장님의 등에 업혀 지인사를 다녔다 한다. 지금도 휴가 때면 지인사에 들러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력에 감사의 불공을 드린다.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편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을까? 회장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병으로 의무 복무만 하는 것도 아닌 장교로서 병사들을 통솔해야하는 직책은 먼저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중요한 자리다. 홍순유 회장님은 강 소령이 입대하는 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들을 위한 불공을 올렸다. 회장님의 불공은 우주법계를 움직여 강 소령에게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펼쳐진다. 강 소령이 보직을 옮기고 나면 전 근무처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전방 GP에서 근무 중, 차량 사고를 극적으로 피한 일 등 모두가 하루도 끊이지 않았던 홍 회장님의 불공의 힘이었다. 군대는 매일 사고와 위험을 안고 있는 곳이다.

김 기자가 군 생활을 하던 20여 년 전 에도 많은 사고를 목격했다. 지금도 아찔했던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제대하고 나서 안 일이지만 우리 모친께서도 매일 양초공양을 올렸다 한다. 위험하고 어두운 곳을 밝혀 달라고 부처님 전 서원했다고 하셨다. 김 기자가 지금도 부처님 일을 하는 것도 모두가 어머니의 양초공양 덕이 아닌가 생각한다.

홍 회장님이 총지종에 입교한 사연 또한 남다르다. 경기도 화성의 부유한 집에서 자란 홍 회장님은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인 양장기술자였다. 부평 토박이인 강정희 각자님을 만나 이곳으로 왔다. 당시 부평에는 양장 원단을 만드는 공장들이 있어 작은 양장점을 운영하며 살림을 꾸려갔다.

1973년 어느 날, 당시 정혜원 스승님이 법의를 만들고자 오셨다. 홍 회장은 단번에 스승님께 반했다 한다. 저리 멋진 옷을 입고 다니시는 분들은 뭔가 남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정혜원 스승님의 교화로 바로 총지종에 입교해 오늘날까지 39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행정진에 임했다. 홍 회장님의 수행 기간이 바로 지인사의 역사인 것이다. 강정희 각자님도 열정적이다. 사원의 힘든 일을 도맡아 하시고, 홍 회장님이 신정회를 이끌어나가는데 큰 역할을 한다. 두 분의 아름다운 모습에 한참을 넋을 잃고 얘기를 들었다.

지인사가 인천 교화의 중심 도량인 이유가 있었다. 밤 낮 없는 수행정진으로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력이 두루 미치는 성취의 도량 지인사. 그 곳에는 자애로운 두 분 스승님과 사원을 내 집 같이 생각하는 교도들이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원을 나서는데, 배웅해 주시는 홍 회장님과 각자님의 모습이 한 쌍의 연꽃으로 어른거린다. 인천 지인사=김종열 기자

 

반응형
총지종보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3. 4. 17. 15:20

-제2회 통일음악예술제. 종립 부산동해중학교에서 2,000여명 동참

반응형

화합과 통일의 불꽃을 쏘아 올리다

 

 

 

 

불교총지종 제2회 통일음악예술제가 106일 오후 430분부터 총지종 종립 부산 동해중학교 운동장에서 봉행되었다. 행사가 진행되기 3시간 전부터 지역주민을 비롯한 부산지역 불자, 총지종 교도 2,000명이 모여들어 대성황을 이루었다. 식전행사로 동해중학교 풍물패 두드림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위드 오케스트라의 위풍당당행진곡으로 축제의 서막을 열었다.

오후 5시에 시작된 제1부 법회 및 개회식은 도현정사(마산 운천사 주교)의 사회와 통영 단향사 경운정사의 집공으로 열렸다. 총지종 연합합창단의 찬불가에 맞추어 총지종 100여명의 스승님들이 행사장 중앙통로를 통해 입장 법단이 마련된 무대 위로 올라 장관을 이루었다. 효강 종령 예하의 입장으로 법회의 시작을 알리는 죽비 소리가 울렸다. 총지종의 정통밀교 의궤에 의해 봉행된 법회는 동참한 교도들뿐만이 아니라, 내빈을 비롯한 부산불자들에게 총지종의 장엄한 위궤와 수법에 동참하는 귀중한 법석을 마련했다. 연합합창단의 회향서원을 끝으로 법회의식을 모두 마치고 이어 개회식이 열렸다.

총지종 통리원장 지성정사는 봉행사를 통해 오늘 음악제에는 각기 가족을 돌보고, 사회 활동을 하면서 어렵게 시간을 내 부처님 말씀을 음성공양으로 전하는 총지종 전국 연합합창단의 공연으로 사회 경제적으로 여려움을 겪고 있는 이 땅의 대중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법음으로 전해드릴 것입니다.”며 전 종도들의 염원으로 이룬 이법 석에 동참해주신 부산시민과 불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총지종 효강 종령은 법어를 통해 동생동사, 동고동락의 대 진리를 하루 빨리 깨달아서 모두가 시기와 질투, 아집과 집착의 굴레를 버리고, 상부상조의 손을 맞잡고 서로 도우며 힘차게 정진합시다. 그러면 행복과 평화의 물결이 넘쳐흐를 것입니다.”며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가 동참하신 모든 불자들에게 가득하기를 서원했다.

부산광역시 불교연합회 회장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은 사무총장 범산스님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음악이라는 공통주제아래 화합의 메시지가 널리 퍼져 북녘 동포에게도 희망의 등불이 되며 서로가 소로에 대한 이해와 양보와 배려의 마음을 키워 나갈 때 비로소 통일과 화합이라는 시대적 사명이 원만 성취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며 불교 음악을 통해 사회 화합을 선도하는 총지종의 발전을 서원했다. 종립 동해중학교 총동창회장이자 동래구 국회의원 이진복의원은 정통밀교종단 총지종의 문화적 역량과 사회통합에 대한 의지를 표현하는 오늘 이 무대를 통해 종립동해중학교가 지역 최고의 명문으로 발돋움하기를 바랍니다.”며 음악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축하했다.

이어 총지종이 마련한 작은 정성을 전달하는 후원금 전달식이 거행되었다. 후원금은 사단법인 이주민과 함께, 사단법인 단미, 다문화 가정 틴터민, 새터민 김선희, 이송이, 바라밀지역아동센터, 동해중, 평양예술단 등에게 지성통리원장이 직접 전달하였다. 특히 다문화가정 몬테 가오리씨에게는 총지종 부산 정각사 자비회에서 마련한 후원금을 전달해 의미를 더했다.

이날 법회에는 부산불교연합회 사무총장 범산스님, 수석부회장 화산스님, 부회장 법민스님, 자인스님, 진각종 부산,경남 교구장 효원정사, 진각종 명륜심인당 주교이자 전 통리원장 회정정사, 미륵종 총무원장 송정스님, 보문종 기획실장 금주스님, 이진복 국회의원, 조길우 동래구청장, 이병두 문화관광부 종무관, 불교방송 이채원 사장, 부산불교연합합창단 단장 등 많은 내외 귀빈들이 음악제를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했다.

1부 법회와 개회식행사를 마친 무대는 동해중 풍물패 두드림의 난타공연으로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부산불교방송 지은아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공연은 서울 마니합창단, 대구 금강합창단, 부산 만다라합창단, 가야금병창 강세영국악인, 비움 중창단, 관무용단, 평양예술단, 초청가수 조항조의 무대에 이어 총지종 연합합창단의 웅장한 합창으로 이어졌다. 첫 무대에 오른 서울 마니합창단은 김양희 선생의 지휘로 정진의노를 저어’, ‘아름다운 강산을 불러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대구 금강합창단은 배해근 선생의 지휘로 꽃향기 가득한 님’, ‘축복두곡의 찬불가를 불렀다. 27년 전통을 자랑하는 금강합창단은 한 여름 무더위를 이기고 얻은 값진 화음을 청중들에게 선사했다. 부산 만다라합창단은 박윤규 선생의 열정적인 지휘로 아리랑 모음곡’, ‘즐거운 날두곡을 연주, 주관 합창단으로 부산 관객들에게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총지종 연합합창단은 이번 행사의 주관 지휘자인 박윤규 선생의 지휘로 120여명이 무대를 꽉 채웠다. ‘얼마나 닦아야 거울 마음 닮을까’, ‘아름다운 세상’, ‘경복궁 타령’, ‘창교가를 연주하고,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무대를 마감했다. 합창단 외 공연에서는 총지종 교도 국악인 강세영 명창의 가야금병창과 탈북자들로 구성된 평양민속예술단의 무대는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초대가수 조항조씨의 무대에서는 흥에 겨운 관객들의 열기로 동해중 운동장을 채웠다.

가을 밤하늘을 수놓은 1,000여발의 폭죽으로 마감한 불교총지종 제2회 통일음악예술제는 사회화합과 계층 간의 융화의 한마당이라는 슬로건을 부산 하늘에 불꽃으로 새기며 그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불교 총지종은 앞으로도 사회 화합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지속적으로 운영 할 계획이다. 부산 동해중= 김종열 기자.

 

 

반응형
총지종보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3. 4. 17. 14:54

제33차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 불교총지종 대표단 참가기

반응형

일본 밀교의 본고장 공해대사의 탄신지 시코쿠 카가와현을 가다

 

 

 

 

 

 

 

 

 

 

 

 

 

 

 

 

 

 

 

33차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가 일본 시코쿠 카가와현 고토히라 선통사에서 봉행되었다. 불교총지종은 통리원장 지성정사, 총무부장 인선정사, 사회부장 우인정사, 서울.경인 교구장 법등정사, 충청.전라 교구장 법우 정사, 국광사 주교 안성정사, 밀인사 주교 원당 정사, 기로스승 우승정사가 대표로 참가하였다.

일본 불교역사상 국가로부터 대사(大師)호칭을 받은 스님은 총 24명 뿐 이다. 일본 진언종의 개창조인 공해(空海)대사도 그중의 한 분이다. 엔기(延喜) 21년 서기 921년에 홍법대사(弘法大師) 칭호를 받는다. 일본에서는 대사하면 홍법대사를 지칭할 만큼 많은 사람들의 숭상한다. 선통사는 공해대사가 태어난 곳이다. 공해대사가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자 대사의 아버지가 자신의 장원을 사원으로 건립한 곳이다. 공해대사는 아버지의 호인 요시미치(善通)를 따 사원의 이름을 선통사(善通寺)라 부른다. 이곳은 동서로 나누어 동원은 본전이 있고, 서원에는 탄생원이 자리한다. 동원에는 금당을 중심으로 상행당, 오중탑(5층 목탑), 명신오사, 삼제왕묘가 있다. 어영당, 성영전, 지장당, 호마당, 표서원, 본방 등은 서원에 자리한다.

시코쿠에는 88 사찰 순례 코스가 있다. 공해대사의 홍법의 길을 따라 88개의 사찰을 차례로 순레하는 것이다. 많은 불자들의 자신의 업장을 소멸하고 성불의 기원으로 구도의 길을 걷는다. 선통사는 그 75번째 사찰이다. 순례자들은 모두가 흰옷에 삿갓과 지팡이를 손에 든 모습이다. 흰옷은 일본 전통 수의다. 즉 망자의 옷이다. 순례길에 죽음을 각오하고 다닌다는 뜻이다. 순례자들의 행랑에는 동행이인(同行二人)이라는 네글자가 쓰여있다. 순례는 혼자가 아닌 공해대사와 같이 한다는 뜻이다. 각 순례지 사찰에 도착하면 본존에 참배하고 납경소라는 사무소에서 순례를 확인하는 도장을 받는다. 그렇게 걸어서 순례하면 4개월에서 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요즘은 버스를 타고 단체로 순례하는 것이 보통이다.

선통사에서 봉행된 한일불교교류회 본 대회는 일본 진언종 밀교의식으로 법회를 열었다. 가시하라 젠쵸 주지스님의 집전으로 열린 의식은 우리 밀교에서는 볼 수 없는 의식들이었다. 하지만 진언 염송의 의궤와 수인 등은 같았다. 특히 염주는 총지종의 염주와 그 모양이 일치했다. 다만 양 방향으로 염주를 나누는 것이 차이이다.

지성 통리원장은 학술대회가 끝나고, 선통사 주지 가시하라 젠쵸 스님과 환담을 나누고, 양국의 밀교를 대표하는 종단으로 우의를 다졌다. 또한 한국인 김묘심 스님이 주지로 있는 대일사를 방문에서는 양국의 밀교종단인 총지종, 진각종, 일본 진언종이 함께 기념 촬영을 하며 밀법 홍포의 의지를 다졌다.

총지종 대표단은 마지막 날, 교오토오(京都)를 따로 방문하여 일본 진언종 지산파 총본산 지적원을 방문했다. 이곳에 소장한 일본 중요문화재 양계 만다라를 견학하기 위해서다. 주지스님의 환대를 받으며 대일여래가 모셔진 본전에 참배하고, 일반인들에게는 공개 하지 않는 만다라를 친견했다. 지적원이 소장한 만다라는 세부 묘사까지 정확하고, 그 색상이 곱기로 유명하다. 본존을 중심으로 양계 만다라를 봉안하는 방식은 같았다. 국보로 지정된 장 벽화와 일본식 정원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명승정원을 둘러보았다. 지적원은 지산파 3,000여 사찰을 총괄하는 본산으로 현재에도 많은 승려와 재가자들의 수행도장으로 자리한다.

지적원으로부터 약 15분 정도 떨어진 일본 정토종 총본산 지은원으로 향했다. 우리의 일주문에 해당하는 삼문은 일본 국보로 지정된 유명한 문화재다. 규모가 사람을 압도한다. 지은원 법무계장(우리의 교무 소임) 스님의 안내로 대종루, 어조, 경장, 법연상인어당을 둘러보았다. 특히 스님들의 수행공간으로 벽장화로 둘러싸인 승방에서 말차 한 잔과 다식을 대접받았다. 이번 참가 대표단의 가장 값진 체험의 순간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산문을 나선 대표단은 오사카 간사이 공항으로 돌아와 본진들과 합류하여 귀국길에 올랐다.

일본 시코쿠=김종열 기자

 

 

반응형